제주 TS 유스호스텔 投宿 記
2014년(甲午年) 4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이었다. 국가적으로는 개차반의 세월호에 많은 학생과 시민이 희생되었고, 이틀 후,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아우를 퇴근길에 개망나니 운전자에게 목숨을 빼앗겠다.
이런 갑오년의 오명을 씻어버리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자는 심정으로, 세모에, 혹한의 한 주일이 될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도 무시한 채 집을 떠나왔다.
바람 불고 진눈깨비 내리는 날, 예약한 제주 TS 유스호스텔에 도착하니 밤이었다. 호스텔 현관을 들어서는 우리 앞에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전광판이 우리의 언 마음을 녹여주었다.
이어지는 호스텔 안에서의 환영 파티에서 이 대표와 우리는 제주 흑돼지 삼겹살 한 상을 차려 놓고 한라산 몇 병으로 회포를 풀었고, 호스텔 사무실 옆방에서 여행 첫날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호스텔을 한 바퀴 돌았다. 어제저녁엔 못 느꼈는데, 객실과 부대 시설이 굉장히 고급스러웠다.
그뿐만 아니라 한라산 정상과 서귀포 바다가 조망권에 들어와 시야를 넓혀주고, 10만 평이 넘는 편백 나무와 삼나무 숲이 인접해 있어 한라산의 깊은 정기를 다 품고 있는 아늑함을 주고 있었다.
그 속에는 자동차나 생활 소음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함과 신비스러운 공간이었다. 세심하고 감성적인 건축주의 성품이 일천 평이 넘는 대지 위에 녹아 있었다.
4박 5일간의 우리 여행은 제주올레를 걷는 것이었다. 오는 날과 가는 날을 빼고 3일간 우리는 하루 한 코스씩을 걸었다.
첫날은 7코스, 다음날은 2코스, 그다음 날은 9코스를 걸었다. 걸으면서 나는 이 길을 만든 사람들의 열정에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우리는 계속하여 제주올레 26코스를 전부 천천히 걸을 예정이다.
여행은 자연과 사람의 만남이다. 그러니 여행은 언제나 자유스럽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어떤 자연,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여행의 가치가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참 행복했다. 자연이 좋았고, 제주 사람이 좋았고, 제주 TS 유스호스텔이 좋았다.
“사람들은 왜? 여행을 떠날까요.
낯선 풍경을 거닐다 보면 우리는 석류 알 같은 기억들이 우리들의 가슴속을 차고 들어옴을 느끼곤 하지요. 일상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그 무엇.
누구나 그 무엇이 그리워질 때면 여행을 떠나곤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여행을 준비하고 계시는지요?
제주는 유엔이 인정했듯이 여행하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춘 세계적인 명소입니다. 저는 여행객이 스스로 자신을 찾고 그 무엇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을 위하여 이곳에 유스호스텔을 지었습니다.
제주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저는 남은 인생을 걸고 저의 열정을 다 할 각오입니다.”
호스텔을 직접 지은 이택승 사장이 밝힌 인사말이다. 참고로 TS는 이택승 사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직접 지었다.
4박 5일 짧지만, 긴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제주공항을 떠나왔다. 눈 덮인 한라산을 뒤로하고, 다시 올 것을 예감하면서……,
★(후기) 이택승 사장(전, 농협 보험기획부장)은 지점장급인 시절에 본부 감사실에서 나와 함께 근무했으며, 2007년 말에 은퇴하여 이 호스텔을 직접 짓고 운영하였다.
그 후 그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 호스텔을 처분하고 강원도 영월로 올라와서 아담한 새집을 지어 아름다운 아내와 행복하게 살았다. 천년을 살 것처럼……
그런데 그는 애석하게도 2020년 10월 23일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그날 나는 직접 상가로 가서 조문했다. 사람의 죽음이란 사람도 예측할 수가 없는 신의 영역인가 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흑흑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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