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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67

서평

by 웅석봉1 2024. 7. 2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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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병진/ 42)

 

잠깐 맑다가 저녁에 비가 내렸다. 방답 첨사(이순신)가 왔다. 순천 부사(권준)가 병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32(정사/ 43)

 

온종일 비가 내렸다. 배의 거적 지붕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 온갖 회포가 가슴에 치밀어 올라 마음이 어지럽다.

 

이응화(李應華, 前 僉使)를 불러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그길로 순천 부사의 병세를 살펴보라고 말했다. 이영남과 이여념이 와서 원균의 비리를 토로하는데 참으로 한탄스럽다.

 

이영남이 왜군의 작은 칼을 두고 갔다. 이영남이 강진(康津) 사람 두 명이 살아 돌아왔는데 고성(高城)에 잡혀가서 문초를 받고 왔다고 말했다.

 

33(무오/ 44)

 

아침에 비가 내렸다. 오늘은 답청절(踏靑節)인데, 흉악한 적들이 물러가지 않아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명나라 군사들이 한양에 들어왔는지를 듣지 못하니, 근심스러움이 이를 데 없다. 종일 비가 내렸다.

 

) 답청절(踏靑節)은 음력 33(삼짇날)로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니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날에는 들에 나가서 푸른 새잎을 밟는 풍습이 있어 답청절(踏靑節)이라 부른다.

 

34(기미/ 45)

 

날씨가 비로소 개었다. 우수사 이 영공이 와서 종일토록 대화를 나누었다. 원 영공(원균)도 왔다. 순천 부사(권준)가 병이 들어 몹시 아프다고 전했다.

 

듣자 하니,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송도까지 왔다가 북로(함경도) 쪽으로 간 왜적들이 설한령(雪寒嶺, 자강도와 함경남도 사이에 있는 고개)을 넘었다는 말을 듣고 송경(松京, 개성)까지 왔다가 다시 서관(西關, 평안도)으로 되돌아갔다는 기별이 왔다. 비통하고 분함을 억제할 수가 없다.

 

35(경신/ 46)

 

맑았지만 바람이 매우 심하다. 순천 부사(권준)가 몸이 불편하여 도로 돌아가야 한다기에 아침에 직접 만나 보고 배웅했다. 탐후선이 도착했다. 내일 적을 토벌하자고 서로 약속했다.

 

36(신유/ 47)

 

맑다. 새벽에 출항하여 웅천에 도착하니 왜적들이 다급히 뭍으로 도망쳐 산 중턱에 진을 쳤다. 우리 군이 쇠 탄환과 편전(짧은 화살)을 비처럼 쏘아대니 죽은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푸하하,

포로가 된 사천(四川) 여자 한 사람을 구출하였다. 칠천량에서 하룻밤을 잤다.

 

37(임술/ 48)

 

맑다. 우수사 이억기와 대화를 나누었다. 초저녁에 출항해서 걸망포(乞望浦, 통영시 용남면)에 이르니 날은 이미 밝았다.

 

38(계해/ 49)

 

맑다. 한산도(閑山島, 통영시 한산면 한산도)로 돌아와 아침밥을 먹고 나니 광양 현감 어영담과 낙안 군수, 방답 첨사 이순신이 왔다. 방답 첨사와 광양 현감이 술과 안주를 준비해 왔다.

 

우수사 이억기도 오고 어란(於蘭) 만호 정담수(鄭聃壽)도 도림(桃林)으로 만든 음식 몇 가지를 보내왔다. 저녁에 비가 내렸다.

 

) 도림(桃林)은 소()를 달리 부르는 말.

 

39( 갑자/ 410)

 

궂은 비가 종일 내렸다. 원식(元植)이가 와서 만나고 돌아갔다.

 

) 원식(元植)은 원균의 사촌 동생으로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을 지냈다. -67-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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