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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자작시

by 웅석봉1 2024. 5. 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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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나는 병인년(1926)에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에서 태어났소

아버지는 거창 신()문의 30세 손()에 둘째로 태어나시고 어머니는 은진송()씨라

위에 형님(1919) 한 분 계시니 내가 둘째요, 아버지도 둘째 나도 둘째. 어허, 좋다.

 

아버지는 왜놈 바짓가랑이 잡고 흔들다가 화병으로 돌아가시니

아무도 없는 객지에서 어머니 혼자 살기가 막막하여

가사를 정리하여 두 아들 데리고

 

산청군 산청읍 내리 *마당 머리로 이주하였지요.

어머니께서는 혼자 살기가 힘들고 과부로 살아가기도 외로워,

순흥 안()씨 집안으로 개가(改嫁) 하셨고요.

 

나는 젊은 시절 형님과 일본으로 만주로 돈 벌로 다녔지요.

외지로 다니면서 안 해본 일이 없고 안 겪은 고초가 없을 정도로

험한 일 힘든 일 도맡아서 하였고요,

 

해방되고 천신만고 끝에 돈 조금 벌어 고향으로 돌아와

형님 몫으로 논 세 마지기 내 몫으로 논 두 마지기를 사이좋게 마련했지요,

그렇게 어머님 모시고 살다가 1949년에 참한 처자 만나 장가도 들었고요.

 

장가들고 이듬해에 동란이 터져 입대하였지요.

()에 가서부터는 내 인생이 영 뒤엉켰지요.

 

사실, 내 자랑 같지만, 내가 인물은 한 인물 했다오.

내 이름이 <익범>인데 나보고 동네 사람들 모두가 예뻠~! 예뻠~!” 하였지요.

그만큼 피부가 곱고 인물이 출중했다는 말이겠지요.

 

그런 인물인데 게다가 조선천지에 내만큼 멋쟁이도 없었지요.

그리니 사방팔방에서 구혼이 줄줄이 라.

어허, 그런데 나는 이미 결혼한 몸이니, 이를 어쩌랴.

 

에라 모르겠다. 총각이라 속이자, 그렇게 생각하고 군 생활을 하는데,

처녀들이 줄을 이었고, 아무리 전쟁통이지만 군대는 심심한 것이라

심심하기도 하고 끼도 발동하여 참한 처자 골라 새장가를 들었겠다. 어허, 우짤꼬.

 

그런데 3년 남짓 살고 처자가 돌연사하니 남은 것은 아들 하나라

그 아들 어쩔 수 없이 본가에 맡기고 다시 군으로 돌아갔다오.

본가에서는 난리가 난 것은 불문가지라.

 

여기서 나의 총각 병은 도져서

또다시 총각이라 속이고 부산 처자와 결혼했지요.

하이쿠아! 여자도 많고 지역도 넓고 결혼도 잘한다. 으흐흐

 

군 생활 중에 적의 총알이 내 팔을 관통하는

총상을 입고 병원 생활 제법 했지요. 군에 6년 정도 마치고 예편하여

부산으로 내려가서 새살림을 차렸고요.

 

없는 집에 자식은 어찌나 많은지,

줄줄이 라, 아들 둘에 딸이 셋이라 다섯을 낳았지요. 한 몸에

 

일자무식은 아니지만 어릴 때 서당 출입이 고작이라,

크게 배운 게 없어,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 공사판이나 기웃거리다가

다행히 큰 대학 종합병원에 말단직으로 취직이 되었지요.

 

그렇게 하여 그럭저럭 지내다가 가끔은 명절에 고향에도 다녔지요.

그러다가 사기꾼한테 속아서 전 재산인 집 한 채 날리고

수정동 산복도로변의 판자촌으로 거처를 옮겼어요. 빈털터리가 된 셈이었죠

 

어허 그런데 또 세월이 흘러 1975년경,

잘 살든 내자가 갑자기 저세상으로 올라갔어요.

평소에 내가 속을 썩이니 내자가 심심초를 즐기다가 암에 걸렸나 봐요. 흑흑

 

이제 내 나이도 쉰도 넘었고 인물도 예전만 못해

새장가 갈 수도 없고 부득이 본처와 같이 살게 되었지요.

부득이 가 아니지~, 정식으로 살게 된 것이라

 

역시 조강지처가 제일이라, 이제부터 정신 차리고 살려고요

다니던 대학 종합병원에서 은퇴하고

내 나이 일흔에 염사(殮師) 자격증을 따서 범일동의 모 병원에 염사로 일하고 있다오

 

한편, 군시절 총상으로 국가유공자가 되기 위하여 수년간 노력했으나 결국 허사였는데,

2000년도에 최말단 한 등급을 추가로 신설하여 최말단 유공자로 등록되었지요.

그래도 다달이 수십만 원의 유공 수당을 받고 있다오, 그만해도 감사하지요.

 

이제 내 살아온 세월을 회상하니 한도 많고 죄도 많은 세월이었소.

내 몸과 합친 여인이 세 부인에 낳은 자식이 아들 다섯에 딸이 넷이라

모두 아홉이라 어허 많기도 하지요,

어허, 그렇게 살아왔다오. 앞으로 그렇게 살아 갈려고요……

 

*마당 머리-산청군 산청읍 내리(內里)에 있는 자연부락의 하나임.

내리(內里)에는 마당 머리. 뒤뜰. 지성. 한밭. 내동 등이 차례로 있음.

 

*후기)

 

202458, 어버이날이라, 이날은 195658일부터 기념해 온 어머니날1973330일에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 법정기념일어버이날로 확대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날은 비단 부모는 물론이고 모든 노인을 공경하자는 뜻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효도하는 날의 행사는 전 세계적으로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이제 노인 축에 속한다. 그렇지만 나도 어느 분의 자식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살아 계실 때나 지금이나 나는 아버지를 원망해 본 적이 없다. 운명으로 생각한다. 그런 아버지께서 2007년에 담도암으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하늘나라로 올라가실 때 꽃가마를 타고 올라가시는 모습이 내 꿈에 선명히 보였다. 시신은 화장하여 대전현충원에 모셔져 있다. 아버님께 명복을 빌면서…… 편히 쉬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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