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 나들이
우리나라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이 뚜렷한 나라도 드물다. 그래서 복 받은 나라요, 그래서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이라 한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키우고 가을이면 거두고 겨울이면 저장한다. 봄이 되면 얼었던 땅이 녹고 온 산이 울긋불긋하고 만물이 소생하나니.
정조 시대 실학자 유본예(柳本藝, 1777~1842)도 『한경지략(漢京識略)』에서 한성부의 백성들이 즐겨하는 순성(巡城) 놀이를 예찬했다. 봄이면 온 국민이 상춘(賞春) 나들이를 즐긴다니 그만큼 우리의 봄나들이는 오래된 전통이다.
이런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아니 더욱 확대되고 있다. 특히 농촌에서도 농사일을 시작하기 직전에 봄맞이 나들이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우리 운곡(雲谷) 마을도 예외가 아니다.
4월 18일, 제법 화창한 날이다. 아침 8시 정각, 마을 회관 앞에서, 일행 마흔셋이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일행 중에는 당연히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았다. 여자가 더 장수하기 때문이다. 외국 사례도 비슷하지만 우리나라는 남자(79.9세), 여자(86.8세)가 평균 나이이니, 여자가 6.9세 더 오래 산다. (2021년 UN 통계자료 참조)
그날, 그 버스에는 구순이 넘는 노인에서부터 육순의 청년들까지 한 버스에 가득하다. 말하자면 경로 여행이었다. 그들 중에는 부부간도 많고, 형제간도 있고, 숙질(叔姪)간도 있고, 때로는 생질(甥姪) 간도 있었다. 물론 이웃 간이 제일 많지만, 모자(母子)간의 가족도 있었다. 어머니는 구순하나요, 아들은 일흔넷이라, ……어허 좋을 씨고.
관광버스는 산청을 출발하여 서쪽으로 달린다. 강천산 휴게소를 지나고, 무안 광주 고속도로를 달려서 함평 나비 휴게소도 지나고, 천사섬(섬이 1,004개소라 천사섬이란다) 휴게소도 지나서,
전남 무안군과 신안군을 연결한 (2013년에 개통, 길이 925m. 폭 20m) 김대중 대교도 지나서 암태도를 넘고 자은도까지 갔다가 목포항으로 뒤돌아 와서 싱싱한 회 정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어허 맛있다.
이어서 북항 승강장에서 목포 해상케이블카(3.23 Km)에 올랐다. 유달산(229.6m) 정상의 기암괴석을 쳐다만 보고, 고하도로 돌아서, 아~ 고하도의 둘레길, 걸어보고 싶은 길을 하늘에서만 걸어보고, 탔던 곳에 내리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어서 홍어 시장에서 아리도록 톡 쏘는 홍어를 눈이 시리도록 구경하고, 함평천지 휴게소를 거쳐서, 담양 죽녹원(竹綠苑)의 품속으로 들어서니, 검은 죽순이 검은 땅을 뚫고 삐죽이 올라오는 그 모습이 대견스럽다. 아~참으로 자연의 섭리는 오묘하도다.
이어서 광주 대구 간 고속도로를 타고 산청으로 돌아오니 하루해가 기울었다. 산청에 돌아와서는 가정주부들을 생각해서, 읍내 식당에서 돌솥비빔밥 한 그릇으로 저녁까지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기쁨이 가득하다. 이래서 농촌도 희망이 있다더라.
특히, 관광버스 안에서의 여흥은 여행의 백미더라, 구순이 넘는 최고령 할머니가 부른 노세가(歌)가 일품이었다. 여기 가사를 음미하면,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며는 못느나니.
화무(花無)는 십일홍(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시구 절시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차차차.
화란춘성(花爛春盛) 만화방창(萬化方暢)
아니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차차차, 차차차, 차차차.
후기)
<노세가>는 나이 든 노인들이 세월이 빨리 간다고 후회 섞인 푸념이 아니다. 이제는 백세시대 아직도 우리는 늙지 않았다. 구구팔팔이삼사(구십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입원하고 살짝이 사라지자)가 오늘의 대세다.
흔들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급의 노시는 모습이 저절로 춤이 터진다. 그날 밤 어머니와 나는 곤히 잠들었다.
오늘 상춘 나들이를 준비하신 이장님과 노인회장님 그리고 이를 도와주신 총무님과 부녀회장님께 감사드린다. 특히 부녀회장님은 저의 어머님을 친부모처럼 일일이 보살펴준 후의에 다시 한번 고개 숙이고 함께하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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