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설악산 나들이> 2~2

기행문

by 웅석봉1 2024. 4. 7. 09:11

본문

상원사의 영산전과 문수전에서 세 자매는 절하고……절하고 또 절한다. 1.5km의 거리에 있는 적멸보궁은 오르막이고 시간도 어중간해 올라가지 않았다. 대신 10km<선재길>을 내려와서 월정사로 들어갔다.

 

<선재길>은 문수보살의 깨달음을 따라 구도자의 길을 이은 선재 동자(善財童子,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53명의 선지식을 차례로 찾아,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만나 진리의 세계를 찾았다는 동자)의 이름에서 연유되었다고 전한다.

 

길은 완만한 내리막으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길옆은 고목들이 즐비한 한적한 숲길이다. 한적한 숲길을 자동차로 내려오니 월정사 천왕문에 이른다.

 

천왕문에 들어서니 가을이 성큼 다가온 기분이다. 월정사의 <적광전(寂光殿)>에서 또 절한다. <적광전>은 원래 비로자나불을 모신 불전이지만 월정사의 <적광전>은 석가모니 본존불을 모신 불전이라고 한다.

 

어머니를 비롯한 형제분들은 모두 독실한 불교 신자들이라 <적광전(寂光殿)> <문수전(文殊殿)> <영산전(靈山殿)>에 삼배한다. 아우와 나는 무신론자라 이 전각에 누구를 모셨는지도 모른 채, 선 자세로 묵념만 하였다.

 

이어서 대관령 삼양목장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경로우대를 해주었다. 일반인은 9천 원, 경로우대는 5천 원이다. 나를 포함한 네 사람은 경로우대이니 2만 원이고, 동생은 비 경로우대로 9천 원이라 합이 29천 원이라 어허 좋다. 표를 사서 목장 속으로 들어섰다.

 

삼양목장은 600만 평 규모의 초지로 여의도 면적의 7.5배나 되고, 동양 최대라고 회사 자랑이 대단하다. 우리는 산에 오르기 전에 시장기를 느껴 식사부터 했다. 목장 초입의 간이매점에서 치즈. 우유. 요구르트를 사서( 25천 원) 먹고, 셔틀버스를 타고 산에 올랐다.

 

정상에 올라서니 경관이 장관이다. 아직은 안개가 간간이 있지만, 수십 기의 풍력발전기가 돌고 있고, 젖소는 물론이고 타조가 긴 목을 빼고 눈을 부라리고, 또한 양()이란 놈의 아장거리는 모습에서 평화를 느낀다. 언젠가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우후.

 

산을 내려서니 삼양라면을 파는 가게에서 20개들이 박스당 1만 원이다. 시중 가격보다 상당히 저렴하여 여섯 박스를 샀다(6만 원)

 

시원한 바람을 타고 내려와서 아우가 추천하는 맛집으로 향했다. 실로암 메밀 국숫집이다. 저녁으로 돼지고기와 동치미국수, 막걸리 한 병을 (7만 원) 먹었다. 맛을 보니 어제 먹었던 막국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별로다.

 

어제는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일품이었는데 오늘은 배가 출출한데도 이 정도니 더 할 말이 없다. 오늘은 좀 이른 시간에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칠보산 휴게소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고(3만 원) 죽도시장에서 생선을 사고(26만 원), 점심을 먹고, 가조휴게소에서 아이스크림(1만 원)을 먹으며, 할아버지 산소이던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 뒷산(지금은 골프장으로 변해버린 산)을 바라보며 좀 쉬다가, 집으로 돌아와 여동생들이 마련한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하였다.

 

돌아오는 날이 마침 어머니의 생신일이다. 부산의 첫째 여동생 부부와 셋째 여동생이 장래 사위 될 사람까지 함께 왔다. 둘째와 넷째는 기왕 산청에 살고 있고, 그러고 보니 여동생 넷이 모두 모였다. 사윗감을 어머니께 인사도 드릴 겸 해서 같이 온 것이리라.……짐작만 한다.

 

여행 마지막 밤에는 우리가 가지고 온 생선회와 그녀들이 준비한 음식으로 또 포식(飽食)했다.

 

이로써 23일간의 여정은 접는다. <효도 관광>의 모습은 아니지만 즐거운 여행이었다. (지출 총액이 8955백 원, 1백만 원에서 조금 남았다. 물론 여기에는 설악 농협 보험 연수원의 숙박료는 사전에 내가 별도로 계산한 것이라 제외)

 

후기)

20244, 그렇게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요즘 와서 부실하다. 물었던 말을 또 묻고, 또 묻고 하신다. 게다가 고집은 얼마나 부리는지, 어처구니가 없을 때가 많다, 나이가 들면 어른도 애가 된다더니, 꼭 그런가 보다.

 

구순을 넘었으니 그럴 나이이기는 하다만, 아직은,…… 자식 된 입장에서는 서운하다. 오래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건강하게 사시는 게 더 중요하다. 전남의 어느 농협에서는 구구팔팔이삼사(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가족들 서운하지 않게, 이삼일 입원해서 죽음) 운동을 벌인다는데,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꼬.

 

#참고로 2011년 할아버지 산소가 있던 자리에 골프장이 들어섰는데, 당시 산소 이전을 하면서 지은 졸시 한편을 여기 옮긴다.

 

할아버지, 이사 갑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고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 뒷산을 기어올랐다.

산기슭 조그만 묘지 앞에 잔 올리는 후손 넷

 

-할아버지, 놀라지 마세요. 오늘 이사 갑니다.

 

동네 노인 두 분이 무딘 삽질을 시작한다.

보기보단 오래된 전문가(專門家)들이다.

노인의 머리가 봉분 아래로 사라질 때까지

바닥의 돌이 보일 때까지 파고 살폈다

 

없다. 뼈의 흔적조차 없었다.

 

80년 된 할아버지 묘지를 이장(移葬)하라는 팻말이 붙은 지 1년이 넘었다.

군청에서 골프장 지어 세수(稅收)를 늘려야 한다니

세상이 거꾸로 달린다. 역시 대한민국답다.

 

애초에 비석 하나 없었으니 이장할 그 무엇이 있겠는가.

흙 한 줌 태워서 허공으로 올리니 흰 구름이 웃는다.

웃는 구름에 절하고 내려오니 허허롭다.

영혼이 쉴 공간마저 묻어버린 후손은 어디서 효를 가르치랴.

 

사람은 흙에서 나고 흙으로 돌아간다고 들었다.

그 말은 옳은 말이 아니었다.

흙이 아니라 흙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그래서 흙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물이 되어 수증기가 되어 바람에,

 

인생의 무소유를 확인한 후손은 낙엽만큼이나 쓸쓸하였다.

 

후기) 그날 밤 두 노인은 읍내에서 목욕하고 밥 먹고 노래방으로 갔다고 들었다.

 

감사합니다. ()

 

 

 

 

'기행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 올레, 길 위의 풍경> 1  (1) 2024.08.11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17) 2024.07.22
<설악산 나들이> 2~1  (3) 2024.04.06
제주올레, 길 위의 풍경(120)  (2) 2023.01.01
청와대를 관람하고  (1) 2022.08.20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