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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命)수필과 명(名)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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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4. 3. 2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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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망운당에서 바라본 세상- 아래가 운곡 마을이요, 저멀리 높은 산이 지리산 천왕봉(1915m)이며, 오른쪽 산이 왕산(925.6m), 필봉산(858.2m)이고, 보이지는 않지만 왼쪽으로 솟은 산이 웅석봉(1099m)이다. 내가 보아도 절경이다.

 

 

()수필과 명()수필

 

수필은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만도 아니요, 더구나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만도 아니다.

 

수필은 중년의 글만도 아니요, 수필가만의 글도 아니며, 그렇다고 수필이 붓 가는 대로 쓴 글만도 아니다. ()수필만이 수필도 아니다.

 

수필은 본래() 바다의 화신이다. 바다는, 표면은 평평하고 넓지만 뿌리는 깊고 속은 다양할 뿐 아니라 맑고 깨끗한 물만 마시지도 않는다. 바다는 차가운 얼음물이나 흙탕물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뭇 사체(死體)도 집어삼킨다. 그러나 바다는 썩지 않는다. 언제나 살아서 움직인다.

 

살아있으니 삶이다. 수필도 삶처럼 다양하다. 그래서 수필은 주제나 형식에 제한이 없고 쓰는 사람이 따로 정함이 없다. 노동자도 경영자도 성직자도 수필을 쓴다. 수필은 누구나 쓰고 누구나 읽기에 어렵지 않다.

 

세상 모든 논픽션은 다 수필이다. 이것이 본래() 수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일찍이 중국의 루쉰(1881~1936)이 즐겨 썼다는 잡감문(雜感文)이란 표현이 바로 수필이라고 생각한다.

 

주위를 둘러봐도 우리의 삶은 잡스러우면서도 글은 고상하게 써야 한다는 답답한 위선이 수필을 좁은 골목으로 내몰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수필을 차버리는 세상에서는 명()수필이 꽃 피기 어렵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도 쓰는 것이다.

 

()수필은 고전(古典)이다. 고전은 재미있고 유익하고 긴 감동을 품고 산다. 최소한 그렇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를 재미있고 유익하고 긴 감동을 주는가.

 

재미있으려면, 주제와 글감이 궁합이 맞아야 하고 촘촘한 짜임새가 필요하다. 빨랫감으로는 목화 적삼이, 심심풀이로는 오징어 땅콩이 제격이다. 같은 감이라고 땡감을 곶감처럼 수정과에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짜임새는 소설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수필도 긴장감 있는 서사가 있어야 재미를 더한다. 유익 하려면,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풀어내어야 한다. 그러려면 깊은 관심과 탐색이 앞서야 하고 부담 없이 읽히는 글이어야 한다.

 

! 이렇게 말하니 수필이 좀 어렵게 다가온다. 그러나 아니다. 다만, 유의할 것은 남을 도울 때도 상대를 배려해야 하듯이 수필도 잘난 척 유식한 척한다면 아무리 유익한 정보라도 독자는 외면할 것이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고 했다.

 

긴 감동을 남기려면, 인정과 멋이 넘쳐야 한다. 아픈 상처의 고백 같은 진솔함이 필요하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보다 저지른 잘못을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을,……,사람들은 더 인간적으로 대한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내 속 깊은 마음을 보는듯하면 더욱 값지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한 편의 수필 속에 단 한 문장의 절창이 있어 명()수필이 된다.

 

그러면 명()수필 두 편을 읽어보자.

 

-온 겨울 어둠과 추위를 다 이겨내고, 봄의 아지랑이와 따뜻한 햇볕과 무르익은 장미의 그윽한 향기를 온몸에 지니면서, 너 보리는 이제 모든 고초와 비명을 다 마친 듯이 고요히 머리 숙이고, 성자인 양 기도를 드린다.

 

이마 위에 땀방울을 흘리면서, 농부는 기쁜 얼굴로 너를 한 아름 덥석 안아서 낫으로 스르렁스르렁 너를 거둔다. 너 보리는 그 순박하고, 억세고, 참을성 많은 농부와 함께 자라나고, 또한 농부들은 너를 심고, 너를 키우고, 너를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보리, 너는 항상 순박하고, 억세고, 참을성 많은 농부와 함께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흑구(1909~1979)<보리> 중 끝부분.

 

주제와 글감의 어울림을 보라. 농심과 보리가 하나 되어 순박하고 절절한 염원을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게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것뿐이 아니다. 모진 고통을 참아내어야 온전히 한 인간이 됨을 자랑하지 않고 암시하고 있다. 게다가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이치를 스스로 느끼게 하니 감동이다. 그러니 명()수필이다.

 

-명태를 생각하면 언뜻 늦가을 텃밭의 황토에 하반신을 묻고 상반신을 햇살에 파랗게 드러낸 채 서 있던 청정한 조선무가 떠오른다. 그 순박 무구하고 건강하기가 과년한 산골 큰 얘기 같은 조선무가 없으면 명태의 담백한 맛을 살려내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산골 동네 텃밭에서 그 청정한 무가 가으내 담백한 맛의 진수를 보여주려고 뼈 무르면서 명태를 기다렸다. 순박한 무와 담백한 생선의 만남. 그야말로 산해(山海)가 진미로 만나는 것이다.

 

문득 아버지의 호기가 그립다. 아침 햇살 가득 차오르던 산골 초가집 부엌 기둥에 걸려 있던 순박한 명태 한 코가 집안 대주의 권위로 바라보이던 그 시절이 그립다. - 목성균 (1938~2004)<명태에 관한 추억> 끝부분.

 

날이 저물 즈음 땔나무 한 짐 거두어 삽짝을 들어서는 가난한 농부의 부엌에 한 양푼 비빔밥과 명태 찌개가 김을 모락거리고 있지 않는가! 축담에는 어린 자식들이 엄마의 저녁 손을 기다리니 허기진 배가 꼬르륵거린다.

 

가족 사랑에 먹는 음식만큼 귀중한 소재도 없거니와 거기에 깃든 애틋한 사연 풀이는 소설처럼 그 뒤가 궁금하다. ‘과년한 산골 큰 얘기가 줄줄이 누워있는 조선 무밭이 선하다.

 

하찮게만 생각했던 명태와 조선무가 만나서 산해진미가 된다, 하였으니 그 궁합이 경탄스럽다. 사람의 마음을 오래도록 잡아두니 명()수필이다.

 

한편의 명()수필을 읽으면 생에 활력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명()수필을 읽고 쓰고자 한다. 그러려면 본래() 수필을 심고 거름을 주어야 한다. 꽃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뿌리를 가꾸는 이 없으면 어찌 홀로 피겠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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