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작전
그녀는 올해 서른 살의 노처녀다. 주위에서는 예전부터 그녀의 결혼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피부는 뺑덕어멈처럼 뺀질뺀질하고 하는 행동은 천방지축이라 꼬마들이 공놀이에 끼어들어, 미니스커트 자락을 펄럭이며 한 발을 허공으로 뛰우 던, 여자 냄새라고는 도무지 없는,
그렇다고 얼굴이나 매끈하면 또 모를까 추녀대회라도 나간다면 1등은 따 놓은 당상인 그런 여자가 오늘 드디어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돌렸다. 삼 년 전부터 제대 후에 그녀의 집에서 자취하고 있는 나로서는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징그러운 얼굴로 내가 싫다는 데도 꾸역꾸역 우물도 길러주고 반찬도 만들어 주던 터이던 그녀가 아마도 그때 나한테 딱지맞은 일을 복수라도 한답시고, 나에게 일부러 장황하고 간곡한 엽서까지 동봉하여 결혼식에 꼭 참석하라는 청첩장을 보냈을 것이다.
나로서는 마땅찮은 초청이지만 거절할 수는 없고 해서, 시내 예식장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휴~ 하고 허공으로 콧방귀를 끼었다. -지가 무슨 잘나서 결혼하나, 지 아부지가 시집 보내주니 가는 거지,-
아마 함박눈이 그녀의 얼굴에 내린다면 머리보다는 딱 바래진 납작한 얼굴에 더 소복이 쌓였을 것이리라. 그 얼굴에 웨딩드레스를 걸쳤다고 무슨 신통한 인물이 더 나겠냐 싶고, 나는 그런 그녀의 옆에 장가든답시고 기분 좋게 서 있을 신랑 되는 사람의 얼굴이 더 보고 싶었다.
모르긴 하지만 반듯한 사람은 그녀와 결혼할 리가 만무한데 어떤 사람인지 구경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예식장으로 향하면서……
그 사람, 아무리 머저리이기로서니 그녀와 결혼하다니 –고생문이 열렸지, 속아도 오지게 속았을기라-생각하며 퓨~퓨! 웃음을 참으며 버스에서 내려 결혼식장이 있는 건물을 오르고 있다.
나의 고물 시계를 보니 2시 10분이었다. 식은 2시부터이니 이제쯤 주례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겠지, 생각하고 2층 수복(壽福) 실로 올라갔다. 복도에는 이미 몇몇 축하객들이 웅성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2층 복도에 마련된 신부 측 접수처란 팻말 앞에서 그냥 들어가기가 민망하여 돌아갈 차비까지 탈탈 털어서 일천 원을 기부하고는 한 사 날 굶겨 생겼다는 기분으로, 괜히 인연이랍시고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왔구나 싶어 씁쓰레한 입맛을 다시며 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건데 또 기이한 현상은 신랑은 없고 신부만 먼저 주례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별 희한한 결혼식도 다 있구나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신랑 입장”이라는 목청 사나운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따 이너무 신랑 너무 연착이로구나……-고요하던 장내가 나를 응시하더니 갑자기 웃음과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도 따라서 하하하 웃으며 신랑을 찾기 위하여 앞뒤 좌우로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서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사회자가 혹시 나를 신랑인 줄 알고 착각하고, 실수했기 때문에 손님들이 웃었을 거라, 생각하며 나도 빈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으려 하니 그녀의 큰오빠가 내 곁에 오더니 나를 주례 대 앞으로 잡아끈다.
내가 신랑이란다 “아~ 이거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나같이 추한 놈이 어찌 신랑이라니요? 형님도 미쳤습니까!” 얼떨결에 튀어나온 말이 아저씨 대신 형님이라 불러 버렸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큰오빠가 억압적으로(일어서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니 반항도 하지 못하고 억지 걸음으로 주례 선생 앞에 그녀와 나란히 서니 기도 차고 말문도 막혀, 당장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버리겠다고 마음먹고 있을 때,
예의 그 사회자가 “신랑 신부 예물교환이 있겠습니다” 하니, 그녀는 나한테 번쩍번쩍 빛나는 최고급 롤렉스 시계를 내 팔목에 턱 하니 채우는 게 아닌가. 내 팔목은 이제 삼십만 원짜리로 변해 있었다.
어허 기왕 이리된 거 이 식장이나 피하고 보자는 생각에 나도 내 팔목에 채워진 고물 시계를 그녀의 팔목에 채워주니, 장내에서는 박수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그때 하얀 드레스의 신부는 그녀답지 않게 흐느끼기 시작한다. -당신을 무척 사랑한 죄뿐이요- 나는 어이가 없지만 결혼사진이니 웃으면서 찍자고 말해 버렸다.
눈자위가 오그라들고 입언저리가 펴질락 말락 하는, 기쁨보다는 슬픔에 가까운 웃음 밖에는 암만해도 나오지 않았다. 당장 그 하얀 드레스를 벗겨 버리고 도망이나 가 버릴까, 생각하다가 그녀 큰오빠의 시선과 마주치고는 맥이 확 풀려 버렸다. 그녀의 큰오빠는 대단한 한량이었다.
지금 나는 그녀와 팔장을 낀 채 축하객들의 사이를 빠져나오고 있다. 웨딩마치에 발을 맞추면서……으흐흑!
1972년 12월 주간 한국 엽편소설 투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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