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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교육(2)

단편소설

by 웅석봉1 2023. 11. 2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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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도 잠그지 않고 외출하는 정신 나간 주민이 가끔 있었다. 1501호 벨을 눌렀다. 응답이 없다. 계량기는 느리지만 돌고 있었다. 다시 누른다. 이제야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누구세요늘어지게 들린다.

 

!!! ~. 경비원 아저씹니다. 지금은 방범 순찰 중입니다. 별일 없으신가, 해서요. 뭔 일 있으시면 경비실로 연락허세요.”

 

서른 가구를 확인하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빈집이 스무 가구다. 그래도 오늘은 빠른 편이다. ? 귀찮게,……,할 일 없이 벨을 누르고 지랄이냐고 따지는 여자가 있으면 두 시간도 모자랄 때가 있다. 10동에서는 이 일로 점심을 거른 적도 있었다.

 

이제 봄이 확연하다. 포근한 햇살과 훈훈한 바람이 아파트 현관문으로 날름거린다. 경비실로 돌아온 무립은 책상 위에 도시락을 깠다. 못생기고 오래된 보온밥통이지만 그래도 이 도시락이 편하다.

 

사료공장에도 다녀보고 가구대리점도 해 보았지만, 지금처럼 맛있는 밥을 먹어 보지는 못했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타면서 그는 경비원 생활을 회상한다.

 

주민들이 그의 진가를 몰라 배척하지만 그래도 관리소장만은 그를 알아주니 걱정은 없다. 처음 면접에서 예절교육에 대한 그의 소신을 듣고 난 소장은 그를 존경한다고 했다.

 

2동 아줌마들이 사소한 시비를 걸어 그를 10동으로 보낼 때 소장은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8동으로 올 때는 8동이 이 아파트 단지의 가장 중심에 있고 표준이 되는 동이라 소장이 특별히 보낸 곳이다. 소장은 8동에서는 꼭 그의 예절교육이 성공하기를 빈다고 격려 말씀까지 해주었다.

 

무립은 커피 한 잔 마시고 밖으로 순찰을 나섰다. 마침 수업을 마친 어린이집 차에서 아이들이 대여섯 내린다. 할아버지 둘과 할머니 하나, 엄마 둘이 내리는 아이들의 빨간 가방을 받아 챙긴다.

 

가방엔 라이언이니 타이거니 하는 단어들이 쓰여 있다. 이를 본 무립은 혀를 찬다. 아이들한테 인성교육은 안 시키고 저런 외국어부터 가르치니 문제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은 마중 나온 어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놀이터로 내 달린다. 놀이터 모래밭이 이내 아이들의 안방이 된다. 할머니가 숨을 몰아쉬며 아이에게로 다가간다.

 

아이의 손을 잡는 순간, 아이는 할미의 손을 뿌리친다. 그 바람에 할미가 모래밭에 넘어진다. 그러자 두 아이가 쓰러진 할미 위에 올라탄다. 아마 할미를 말이나 침대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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