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노라 닫지 말며」
잘 가노라 닫지 말며/ 못 가노라 쉬지 마라//
부디 긋지 말고/ 촌음을 아껴 쓰라//
가다가 중지 곧 하면/ 아니 감만 못하니라//
김천택의 「잘 가노라 닫지 말며」 전문.
「돈 많다고 건방 떨지 말며」
돈 많다고 건방 떨지 말며/ 돈 없다고 기죽지 마라//
부디 중심을 지키어/ 금욕에 나부끼지 마라//
돈이 인품을 흔들 양이면/ 아니 갖만 못하니라//
패러디 시인의 「돈 많다고 건방 떨지 말며」 전문.
<시인 소개>
김천택(1680년대 말~미상)은 자는 백함(伯涵) 또는 이숙(履叔), 호는 남파(南坡), 본관과 생몰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680년대 말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됨.
그 근거는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에 나열된 이름의 순서로 보아 김수장(金壽長) 보다 몇 살 연장자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김수장의 출생년이 1690년(숙종 16)이므로, 김천택은 이보다는 다소 많을 것이기 때문에 1680년대 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혹자는 1687년에 태어나서 1758년에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김천택의 가계와 신분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김천택의 신분에 관해 『해동가요』의 작가제씨(作歌諸氏)에는 숙종 때의 포교(捕校)라 소개되어 있다.
당시 가객들의 신분이 대개 그러하듯이, 그도 역시 중인계층으로서 관직 생활은 젊었을 때 잠시 지냈고, 거의 평생을 여항(閭巷)에서 가인. 가객으로 지낸 것 같다.
『청구영언』에서 자신의 시조를 여항육인(閭巷六人)이라는 항목에 넣은 것을 보더라도 이를 짐작할 수가 있다. 여항(閭巷)이란 여염집을 말한다. 즉, 백성의 살림집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김천택은 창(唱)에 능하고 시조를 잘 지어 『해동가요(海東歌謠)』에 57수를 남겼고, 『청구영언(靑丘永言)』을 편찬해 국문학 사상 귀중한 자료를 남겼다. 『해동가요』와 『청구영언』은 『가곡원류(歌曲源流)』와 함께 3대 시조집이다.
수양가(修養歌)인 본 시와 촌철살인 같은 패러디 시 「돈 많다고 건방 떨지 말며」도 음미해 보시길 『나무위키』 등 참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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