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신다」
서울이나 광주에서는/ 비가 온다는 말의 뜻을/ 알 수가 없다/ 비가 온다는 말은/ 장흥이나 강진 그도 아니면/
구강포쯤 가야 이해가 된다/ 내리는 비야 내리는 비이지만 비가/ 걸어서 오거나 달려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어떨 때 비는 싸우러 오는 병사처럼/ 씩씩거리며 다가오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그 병사의 아내가/
지아비를 전쟁터에 보내고 돌아서서/ 골목길을 걸어오는/ 그 터벅거림으로 온다/ 그리고 또 어떨 때는/ 새색시 기다리는 신랑처럼/
풀 나무 입술이 *보타 있을 때/ 산모롱이에 얼비치는 진달래 치마로/ 멀미 나는 꽃 내를/ 몰고 오시기도 하는 것이다// *보타다-마르다.
이대흠 시인의 「비가 오신다」 전문.
<어설픈 해설>
비가 오신다? 참 고매한(?) 표현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하니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아니 달려서 온다. 또는 씩씩거리며 다가온다. 터벅거리며 온다. 옳거니,……, 좋아요, 좋다.
그리고 또 어떨 때는, 새색시 기다리는 신랑처럼 풀 나무 입술까지 마르고 있을 때 산모롱이에 얼비치는 진달래 치마로 멀미 나는 꽃 내를 몰고 오시기도 하는 것이었다.
신랑이 새색시를 기다린다? 어림없는 말씀인가? 얼마나 개성 넘치는 표현인가? 현미경도 그런 현미경이 없고……, 망원경도 그런 망원경이 없더라.
이대흠(1968~) 시인은 전남 장흥 출신으로 서울예술대학과 조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4년 《창작과 비평》에 「제암산을 본다」 외 여섯 편의 시를 발표하여 등단함.
시집으로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귀가 서럽다』,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상처가 나를 살린다』, 『물속의 불』, 『코끼리가 쏟아진다』 등과
산문집 『탐진강 추억 한 사발 삼천 원』, 『이름만 이뻐먼 머한다요』, 『그리운 사람은 기차를 타고 온다』, 장편소설 『청앵』 등.
현대시동인상.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애지문학상. 조태일문학상. 전남문학상. 공간시낭독회문학상. 천상병문학상 등을 수상.
시인은 고향인 전남 장흥에서 천관문학관장을 그만두고 2023년 여름부터 <수문랜드 블루투어 오토캠핑장> 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공식 직함은 청원경찰이다.
그에 앞서 시인은 서울에서 10년, 광주에서 10년, 제주에서 4년을 살고 2010년부터 장흥으로 낙향하여 지내고 있다. 강릉에 정동진이 있다면, 장흥에는 정남진이 있다. 《나무위키》 등 참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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