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 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문태준 시인의 「맨발」 전문.
<어설픈 해설>
어물전의 개조개 한 마리가 빼꼼히 내민 맨발에서, 시인은 그의 처지가 저 개조개와 다르지 않음을 간파(看破)한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그것은 마치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로하기 위해 잠깐 관 밖으로 나온 것과 같았다.
시인도 저 개조개처럼 하루의 지친 일과를 마치고, 가난의 냄새가 펄펄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사랑하는 자식들은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아련하여라!
하지만 너무 상심치 마시라. 요즘은 건강을 위하여 너도나도 맨발 걷기가 유행이니 그 점은 참으로 다행이 아니겠는가!
문태준 시인(1970년~)은 김천에서 출생하여 김천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1994년 《문예 중앙》에 시 「처서(處暑)」 외 아홉 편으로 등단.
1996년부터 불교방송에 입사하여 2020년 불교방송 제주지사 총괄국장으로 근무 중이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등이 있다.
동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목월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나무위키》 등 참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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