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1916년)에 가(假) 출옥하자, 아내가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안신여학교> (황해도 안악군 소재)로 간 이후 농사를 지으면서 소작인들을 계몽하고 학교를 세우는 등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지내다가 3.1 운동에 가담한 후 상해로 망명하였다.
상해 망명 이후 임정 활동을 하면서 선생은 이승만의 외교 독립론을 반대하고 ‘자주독립론’을 고수하였다. 그는 외국의 힘으로 독립한다면 결국은 도와준 나라의 식민지가 될 것이니, 자주적으로 투쟁하여 독립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선생은 『백범일지』의 1947년 11월 15일 자 발간사(개천절은 원래 음력 10월 3일이었으나 1949년 양력으로 바뀌었다. 1947년 11월 15일은 음력으로 10월 3일, 개천절이다.)에서 민족의 철학을 강조하였다. 발간사까지도 개천절에 맞추었으니, 그의 민족의식은 남달랐다.
“우리의 서울은 오직 우리의 서울이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해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 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
1943년 9월 무솔리니 정권의 몰락 후 이탈리아는 공식적으로 항복했고, 1945년 5월에는 독일까지 항복하였으나 아시아에서는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한방씩을 떨어뜨렸다. 이로써 전쟁은 종식되었고, 독일과 한국은 분단되고 말았다. 독일은 패전국이니 그렇다 치고, 우리나라가 왜 분단되어야 하는지는 수긍하지 못하겠다.
최근(2011년) 아시아의 리더 미얀마 민주화 운동가 <아웅 산 수지> 여사(1945년~,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는 국내 한 언론사(매일경제 1월 1일 자)의 신년 특별인터뷰에서 남한과 북한이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해 당신은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는가? 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무엇보다 나는 서로 같은 언어와 문화와 역사를 공유한 한 민족이 서로 합쳐지지 않고 이처럼 따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폭력을 통한 해결 방법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비폭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내심과 상대 얘기를 귀 기울여 들으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왜 같은 역사와 문화를 가진 두 나라가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눠야 하는가.”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지난 연말에 중국 공산당의 기관지인《인민일보》의 자매지《환구시보》는 “중국은 한국을 손봐줄 지렛대가 많다.” 그러니 우리말을 잘 들으라고 협박하였다니 참으로 황당하다.
어디 중국뿐이겠는가 일본도 심심찮게 우리를 괴롭힌다. 러시아와 미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안타깝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이니 어쩌겠는가.
그러나 절망하지 말자. 길은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희망을 버리지는 말자. 김구 사상의 실천이 그 길이 아니겠는가. 어렵더라도 민족의 문제는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어 풀어야 후환이 없을 것이다. 지금 지구상에서 같은 민족이 분단되어 둘로 갈라진 나라는 우리 외는 없다.
남북한 지도자들에게 『백범일지』의 일독을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글을 쓴 지가 10년도 훌쩍 지났지만 지금(2023년)도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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