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오/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 오리다.//
김동명 시인의 <내 마음은> 전문.
<내 마음은>
내 마음은 one go요/ 그대 피를 내오/ 나는 그대 피를 먹고/ 일단 3점을 나오리다//
내 마음은 two go요/ 그대 쌍피를 내오/ 나는 그대 상피를 먹고/ 힘차게 two go를 외치리다//
내 마음은 three go요/ 그대 광을 내오/ 나는 그대 광을 먹고/ three go에 광박까지 씌우리다//
내 마음은 싹쓸이요/ 이제 몇 점이나 났는지 계산해 봅시다/ 만약 상한가에 이르렀으면/ 나는 휘파람을 불며 유유히 일어서리다//
패러디 시인의 <내 마음은> 전문.
김동명(1900년~1968년, 호 초허超虛) 시인은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 원산으로 이사하여 1920년 함흥 영생중학(永生中學)을 졸업하고,
1921년 흥남의 동진소학교(東進小學校) 교사로 출발하여 여러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3년 《개벽》 지에 시(詩)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주시면」으로 등단함.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서 낮에는 아오야마학원(靑山) 신학과, 밤에는 니혼대학(日本) 철학과를 졸업함.
1930년에 첫 시집 『나의 거문고』를 간행함. 이후 「나는 보고 섰노라」, 「애달픈 기억」, 「농녀(農女)」, 「추억」, 「공원의 밤」, 「구라파 송(頌)」, 「첫봄」 「파초」 등의 시를 발표했으며, 1930년부터 1940년 초까지 약 10년이 시인으로서 그의 황금기에 해당한다.
시집 『파초』, (1938년), 『하늘』, (1948년)에 그의 시풍이 서려 있다. 마지막 시집 『목격자』는 광복 전의 전원적 특질과 광복 후의 사회적 경향을 무리 없이 표현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수필집으로는 『세대의 삽화』, 와 『모래 위에 쓴 낙서』가 있고, 정치 평론집으로는 『역사의 배후에서』, 와 『나는 증언한다』가 있다.
시집 『진주만』으로 1954년 아시아 자유문학상(1953년에 아시아 재단이 전국 문화 단체 총연합회와 공동으로 제정한 문학상으로 자유사상 고취가 목적임. 1959년 제7회 시상으로 폐지함)을 수상함.
1945년 흥남 서호중. 여자중학교 교장, 1946년 조선민주당 함경남도 당 위원장, 1947년 단신 월남하여 한국신학대학 교수 다음 해에 이화여대 교수를 역임하고, 1960년 이화여대 교수를 사임하고 참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진출함.
1968년 고혈압으로 사망하며 그의 유해는 서울 중랑구 망우동 묘소에 안장되었다가 2010년에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노동리 선영으로 이장함. 이곳에는 그의 문학관이 같이 있다.
위 시는 시인의 초등학교 제자인 작곡가 김동진(1913년~2009년)이 곡을 붙여 노래가 되었다. 패러디 시 <내 마음은>도 음미하면 재미를 더할 것이다. 〈나무 위키〉 등 참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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