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반
김을 모르고 서양 사람들은/ 카본 페이퍼라 한다./ 모르시는 말씀, 그건 초록색 바다 밑/ 몰래 흑진주를 키운 어둠이라네//
파도가 가라앉아 한 켜 한 켜 쌓여서/ 만들어 낸 바다의 나이테를 아는가// 어느 날 어머니가 김 한 장 한 장/ 양념간장을 발라 미각의 켜를 만들 때/ 하얀 손길을 따라 빛과 바람이 칠해진다네.//
내 잠자리의 이불을 개키시듯/ 내 헌 옷을 빨아 너시듯/ 장독대의 햇빛에 한 열흘 말리면/ 김 속으로 태양과 바닷물이 들어와 간을 맞춘다.//
김자반을 씹으면 내 이빨 사이로/ 여러 켜의 김들이 반응하는 맛의 지층/ 네모난 하늘과 바다가 찢기는 맛의 평면//
이제는 손이 많이 간다고 누구도 만들지 않는/ 어머니 음식이라네// 빈 장독대 앞에서 눈을 감으면/ 산간 뜰인데도 파도 소리가 나고/ 채반만큼 둥근 태양의 네모난 광채/ 고향 들판이 덩달아 익어간다네//
이어령 시인의 <김자반> 전문.
파도가 가라앉아 한 켜 한 켜 쌓여서, 만들어 낸 바다의 나이테를 아시는가? 어느 날 어머니가 김 한 장 한 장 양념간장 발라 미각의 켜를 만들 때 하얀 손길을 따라 빛과 바람이 칠해지는 것을 아시는가?
김을 모르는 서양 사람들은 카본 페이퍼라 한다는데, 이는 아무것도 모르시는 말씀, 그건 초록색 바다 밑, 몰래 흑진주를 한 켜 한 켜 키운 어둠이라는 데 이를 아시는가?
내 잠자리의 이불을 개키시듯, 내 헌 옷을 빨아 너시듯, 장독대의 햇빛에 한 열흘 말리면, 김 속으로 태양과 바닷물이 한 켜 한 켜 들어와 간을 맞춘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김자반을 씹으면 내 이빨 사이로, 여러 켜의 김들이 반응하는 맛을 지층 네모난 하늘과 바다가 한 켜 한 켜 찧기는 맛의 평면을 아시는가?
이제는 손이 많이 간다고 누구도 만들지 않는 어머니 음식이 되었는데, 빈 장독대 앞에서 눈을 감으면 산간 뜰이 되었는데, 파도 소리가 나고 채반만큼 둥근 태양의 네모난 광채들이 되었는데, 고향 들판이 덩달아 한 켜 한 켜 익어가는 사실을 아시는가요?
이어령(1934년~2022년) 시인은 충남 아산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 단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경기고등학교 교사, 단국대학교 강사,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역임함.
1956년 <우상의 파괴>라는 짧은 글이 한국일보(1956년 5월 6일 일요판)에 실려서 논란이 되었다. 이글에서 당시 문단의 거두였던 소설가 김동리, 시인 조향, 소설가 이무영 등을 비판했으며, 그 후에도 황순원, 염상섭, 서정주 등을 ‘현대의 신라인들’이라고 신랄한 비평을 가했고,
또한, 1967년 이른바 ‘분지 필화사건’이라고 남정현의 단편소설 <분지>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 “반미사상을 부추겨 북괴의 대남 적화 전략의 상투적 활동에 동조한 작품”을 썼다는 것이 검찰 기소 요지였다.
이에 이어령은 법정에서 피고인 측 증인으로 출석하여 피고를 변호했다. 법정에서 “문학은 본질적으로 저항이다. 아무리 평화 시대라도 작가는 저항성을 지닌다”라고 변호하였고,
“작가는 달을 가리키는데 보라는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병풍 속 호랑이를 진짜 호랑이로 아는 자는 놀라겠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아는 자는 놀라지 않는다”라는 명언을 남겼으며,
(검찰은 남정현에게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구형했으나 법정은 징역 6개월, 자격정지 6개월에 선고 유예를 판결했다.)
또한, 1968년에는 김수영과 소위 ‘불온시 논쟁’을 벌렸다. 문학의 현실 참여를 두고 문인들은 어떤 태도이어야 하는가의 논쟁이었다. 사상계와 조선일보 등 주요 언론 지면을 통한 논전이었다.
이어령은 이렇게 1950년대 젊은 기수로 주목받게 되었고, 1960년에는 만 26세의 나이로 서울신문 논설위원이 되었으며, 이후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를 거쳐서, 1973년에는 잡지 《문학사상》과 출판사 《문학사상사》를 설립했다.
1963년 이어령은 경향신문에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수필을 연재하여 크게 인기를 누려 그해 단행본으로 출판, 1년에 10만 부가 팔리는 인기 작가가 되었다.
그 후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을 총괄 기획했다. 이때 그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당시 ‘화합과 전진’이라는 다소 딱딱한 느낌의 문장을 ‘벽을 넘어서’라는 구호로 바꿔 역동성을 표현해낸 명문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개막식에 등장시킨 ‘굴렁쇠 소년’ 역시 이어령의 기획이다. 경기장을 가득 메우던 단원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아주 평화로운 정적 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며 경기장 중앙을 사선으로 지나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길이 남을 명장면이었다.
그 후 노태우 정부 초대 문화부 장관이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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