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과
동지바람에 문풍지에 울던 날/ 부엌 어디 깊숙이 감추어 두었던/ 옅은 얼음 몇 조각 둥둥 뜬 수정과./ 칭얼대는 내게 건네던/ 할머니 손맛.//
세계를 누빈다는 코카콜라/ 감히 넘보지 마라// 이 땅에 지천인 생강 계피/ 끓였을 뿐이다/ 여기에/ 바람 탄 노을이 켜켜이 물든/ 추녀 끝 곶감 한 조각/ 별빛으로 속살 익힌 잣 몇 개/
단순한 조리 오묘한 맛// 베르사유 궁정 요리사인들/ 별빛 담긴 이 향을 알기나 할까/ 바이킹 후예도/ 서부 달리던 포장마차 후예도/
노을 묻은 이 맛……// -여보, 이번 설엔 수정과 좀 담급시다/
이길원 시인의 <수정과> 전문.
<어설픈 해설>
동지 바람에 문풍지가 울던 날, 부엌 어딘가에 깊숙이 숨겨 두었던, 얇은 어름 몇 조각 둥둥 띄운 수정과를 아시나요?
이 땅에 지천인 생강. 계피 끓인 물에 추녀 끝에 매단 곶감 한 조각과 별빛에 속살 익힌 잣 몇 개 넣은 것을, 어린 시절 칭얼대는 나에게, 할머니께서 내민 수정과를 아시나요?
베르사유 궁정 요리사들이라도 별빛 담긴 이 향을 알기나 할까, 그 옛날 배 타고 무역이나 약탈하던 바이킹 후예들도, 광활한 미국 서부를 달리던 포장마차 후예들도, 노을 묻은 이 맛을…… 수정과 이 맛을 알기라도 할까요?
여보, 이번 설 엔 세계를 누빈다는 코카콜라도 감히 넘보지 못하는 우리 고유의 전통 음식, 수정과를 좀 담급시다. 그래서 듬뿍 먹어 봅시다. 사랑하는 여보 야!
이길원 시인(1944년~현재)은 충북 청주 출신으로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91년 《시문학》에 <목동 허수아비>, <분재>,<서울 플라타너스>로 등단.
《주부 생활》 편집장, 한국 현대 시인협회 사무국장. 상임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국제펜클럽 이사, 한국본부 이사장. 한국시인 작가 협의회 회장 등 역임.
현재는 주) <태평양 그랜드(특수인쇄업)>를 설립하여 운영 중임.
시집으로 『하회탈 자화상』, 『복수초』, 『은행 몇 알에 대한 명상』, 『어느 아침, 나무가 되어』, 『헤이리 시편』, 『계란 껍질에 앉아서』, 등.
천상병시인상. 윤동주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음.
*국제 펜은, 시인(Poet), 에세이스트(Essayist), 소설가(Novelist)의 영문 이니셜을 뜻한다. 1921년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한국에는 1954년에 설립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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