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밥
달이 가장 밝은 날엔/ 아직도 꼬투리를 털어내지 않은/ 곡식 보퉁이를 풀어 농사 밥을 짓는다/ 액은 멀리멀리 가라고/ 기쁜 소식만 오라고/ 고봉으로 담아낼 보름 밥을 짓는다//
오곡밥을 먹어야 새살이 난다며/ 엄마는 새벽부터 부럼을 깨게 하고/ 묵은 나물을 무쳤다/ 쌀, 콩, 팥, 조, 수수처럼 색깔도 크기도 다른/ 우리 남매들은 손잡고 소원 빌며/ 둥근 달빛을 안았다//
갈라진 엄마의 손끝에/ 퍼석퍼석 솟은 거스러미도/ 발아 發芽를 꿈꾸는 정월 대보름날은/ 휘영청청 달빛 휘감고/ 보름 밥을 먹는다/ 시루에서 푹 쪄낸 풍요를 먹는다/ 서로 숟가락 건네며//
김정인의 <오곡밥> 전문
<어설픈 해설>
아~ 이런 세시 풍습이 있었던가! 까마득하다. 정월 대보름! 그땐 정말 그랬지. 서로 숟가락 건네며……그랬었지.
정월 대보름날 아침이면 오복 중의 하나인 이도 강해지고 부스럼도 나지 말라고 부름도 깨어 먹었지. 액땜하자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오곡밥을 조금씩 얻어 와서 온 식구들이 나누어 먹었었지……, 더위팔기도 유행이었지. 그땐 그랬지.
귀가 밝아지고 귓병도 생기지 말라고, 귀 밝이 술이라고, 술도 조금씩 나누어 마셨지. 부자되라고 김도 몇 장씩 싸서 먹었지, 쌀. 콩. 팥. 조. 수수도 시루에서 푹 쪄낸 풍요도 먹었지.
보름밤이 되면 달집도 만들어서 태우면서……,태우면서 달을 보고 소원도 빌었었지. 풍년도 기원하고 ……그래서 소원성취를 너도나도 하였었지. 달이 가장 밝은 날엔 아직도 꼬투리를 털어내지 않은 곡식 보퉁이를 풀어 농사 밥을 지었다지. 그땐 그랬지.
그러나 지금은 그 귀하던 풍속을 다 어디로 갔는지 가고 달집태우기만 곳곳에서 간간히 하고 있다지 아마……
김정인(1951년~ 현재) 시인은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서울 출생 경북 상주에서 자람. 시집으로 『오래도록 내 안에서』, 『누군가 잡았지 옷깃』 산문집 『엄마는 7학년』 2006년 초등학교 교사로 은퇴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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