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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택명의 <비지끼개>

시평

by 웅석봉1 2023. 6. 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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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찌개

 

수십 년래의 혹한이라고/ 구석 선반의 먼지 쓴 TV가 뉴스를 전하고 있는 사이/ 보글보글/ 황달 걸린 흰자위처럼 노리끼리한/ 비지찌개가 끓는다/

 

언 손 비비고 들어온 어깨 처진 사내들/ 김 서린 안경 너머로/ 컬러풀한 신품 막걸리잔 부딪치며/ 그래도 호기롭게 원샷을 한다/ 포도청 같은 목구멍을 달래는 순한 알코올의 기운/

 

콩비지 묵은김치 돼지고기 양파 마늘 새우젓/ 여리고 착한 것들 질그릇 냄비 안에서 사이좋게 섞이며/ 싼 게 비지떡 신세에서/ 섬유질 단백질에/

 

한 많던 세월 밤새워 두부 만드시던/ 아아 이미 지상에는 없는 어머니,/ 고향의 그리움까지 섞이어/ 웰빙 건강식 대접받는다고,/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지글지글/ 힘차게 끓어 넘친다//

 

권택명의 <비지찌개> 전문.

 

비지란 무엇인가? 다 아시는 말이지만 다시 한번 상기하면 비지는 콩의 손자쯤 된다. 콩에서 두부에서 비지로 나아간다. 그러니 콩이 할아버지요, 두부가 아버지요, 비지가 손자가 될 것이다.

 

그 옛날 어린 시절. 가난하던 시절에 동네잔치라고 끝나면 두부를 하고 난 그 찌꺼기인 비지란 놈을 마을 사람들이 서로 챙기려고 야단법석이었다. 그 시절이 그립고 그래서 아득하고 감감 무리하다.

 

콩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 할 정도로 영양가가 높은데 그 콩을 만들고 난 부산물이 비지라면 이 또한 영양가는 더 말해 무엇하리오. 비지에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칼슘. 철분. 나트륨. . 식이섬유. 나이아신. 칼륨이 풍부하고 수분이 많다.

 

그럼, 이 시를 음미해보자. 때는 수십 년 이래의 혹한이라는 어느 해, 겨울의 문턱에서 시인은 고물이 다 된 TV를 켜고 뉴스를 듣는데, 저쪽에서는 흰자위가 황달이 걸려서 노리끼리하게 보이는 것이, 다름 아닌 비지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데……

 

어디선가 밖에서 들일 하다가 언 손을 비비고 들어온 어깨 처진 사내들이 김이 서려서 뿌연 안경을 끼고, 그래도 즐겁다고 컬러풀한 신품 잔으로 막걸리 한 잔 호기롭게 부딪치면서 원샷을 한다. 마치 포도청 같은 목구멍을 달래는 순한 알코올의 기운으로……

 

콩비지. 묵은김치. 돼지고기. 양파. 마늘. 새우젓 등의 여리고 착한 것들을 질그릇 냄비 안에서 사이좋게 섞어서, 싼 게 비지떡이라고는 하나 섬유질 단백질이 얼마나 풍부한가 아~ 한 많은 세월 밤새워 두부 만드시던 아~아 이미 지상에는 없는 우리 어머니……,

 

고향의 그리움까지 섞이어 웰빙 건강식 대접받는다고 아~아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아 세상에나 다시 보자. 지글지글 힘차게 끓어 넘치고 있나니, 어린 시절에 먹고, 지금은 까맣게 잊고 있던 그 비지끼개여……대를 이어 봉사하라!

 

 

1960년대 중후반 잡지 학원을 중심으로 시단의 학생 스타들이 있었다. 대구 대륜고의 정호승. 대구 상고의 권택명. 마산여고의 김옥영. 부산 동의공고의 강태기……이들은 당시 학원문학상을 주름잡았었다.

 

권택명(權宅明. 1950~현재) 시인은 경주시 안강읍 출신으로 대구 상고 야간부를 졸업하고 1969년 외환은행에 입행해서 주경야독으로 영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하였다.

 

그 후 그는 부평지점장과 서울 강남 영업 본부장을 거쳐 2005년 외환은행 나눔재단 이사로 근무하였고, 8년간의 상근 이사로 재직하였으며 은행 퇴임 후 펄벅재단 상임이사 등을 역임함.

 

1974년 시 전문지 심상신인상을 수상. 첫 시집 사랑· 이후5권의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10회 바움문학상 등을 수상하였고, 한국시인협회 교류위원장. 기획위원. 사무국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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