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정류소를 지나오면서 그날의 생각이 생생하게 되살아나자, 나의 눈에서 눈물이 고였다. '할머니 감사해요, 그때는 죄송해요. 할머님 사랑해요.'
할머님의 산소를 뒤로하고 삼거리에 차를 세우고 엄마를 기다렸다. 잠시 멈춘 흰 눈이 또 내리기 시작한다. 금 년 들어 눈이 자주 오고 있다. 어제 서울에도 많은 눈이 내렸다. 지금 도로에 쌓이고 있어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은 무리다.
엄마가 거리로 나올 확률은 거의 없다. 하는 수없이 나는 차를 움직였다. 인근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워 부산으로 향했다.
5
고속도로가 눈에 덮여 차들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부산에 도착하니 자정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지금 시간에 이모님을 찾아가기는 너무 늦었다. 나는 부산역 근처의 사우나에 들어갔다. 잠을 잠깐 잘 요량이다. 한참을 잔 것 같다. 심야 사우나에서 미역국 한 그릇으로 늦는 아침을 때우고 이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집에 계신다. 내가 이모님 댁에 들어갈 때는 거의 한나절이 되어서다. 둘이 마주 앉자마자 이모님은 한숨부터 지으신다. 나를 책망하셨다.
“그래, 특사로 나오는 걸 왜? 몰랐을 고! 소홀했어”
나는 변명하지 않았다. 이모님은 엄마의 언니다. 수년 전 연말에 정년 퇴임하셨다. 나는 초등학교 6년간 이모님 댁에서 학교에 다녔다. 이모님의 성격을 조금은 안다. 이모님은 엄마보다 더 깐깐한 성격이시다.
“이모님 죄송해요. 그런데 엄마는 어디 계실까요? 외할머님과 아버님 산소에 인사한 게 확실해요”
나는 이틀 동안의 일을 말씀드렸다. 이모님은 말씀이 없으시다. 그러더니 불쑥 한마디 하신다.
“좀 두고 보자”
이모님은 혼자 말로 한마디 더 하신다.
“아직도 정신이 안 난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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