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의 <눈> 전문
<어설픈 해설>
1연은 눈이 살아 있음을 강조한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도 살아있고, 펄펄 날아다니는 눈도 물론 살아있고 아마 나뭇가지에 떨어진 눈도 살아있을 것이다. 2연은 기침하자고 강조한다. 젊은 시인도 늙은 시인도 모두 다 기침을 하자. 그것도 마음 놓고 기침하자고 채근한다.
기침이란 무엇을 말함인가? 기침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의 징후이니 참된 생명력이 없다고 유추한다. 그러니 시인들이여 꿈에서 깨어나라는 뜻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현실을 바로 보라는 말이다.
3연에서는 다시 눈은 살아있다고 강조한다.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4연에서는 기침을 하자고 또다시 강조한다. 기침이 안 나오면 가래라도 뱉으라고 한다.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말은 <눈은 살아 있다>와 <기침을 하자>로 요약된다. 살아 있는 눈을 보고 세상을 밝힐 자세로 살아서 세상을 바꾸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이 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하늘에서 내리는 것은 눈과 비일진대 이를 비교해보라. 눈꽃이 순수하다면 빗줄기는 세차다. 눈이 오고 난 뒤는 온 세상이 아름답다가 눈이 녹으면 누추하다. 그러나 비는 누추한 대지를 깨끗이 청소한다. 그렇다고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눈의 순수성을 강조한 것일 뿐이다.
사족 1)
<<김수영을 위하여>> (강신주 지음. 천년의 상상)이란 책을 참고하시라. 일독을 권한다.
“눈은 순수하고 고결하다. 신처럼 모든 것을 관조하지 않고, 스스로 더러워질 것을 감내하면서도 기꺼이 모든 것과 함께하려고 한다. 눈은 더러운 진창도, 썩어 가는 시체도, 악취를 풍기는 오물도 가리지 않고 그들을 덮어 고결하게 승화시킨다. 눈 내리는 날 세상의 모든 존재는 빈부, 미추, 선악, 강약을 넘어서 동등하게 변한다. 부자의 집도 빈자의 집도 똑같이 흰 지붕이 되고, 대학 교수의 머리에도 구걸하는 아이의 머리에도 똑같이 흰 눈이 쌓이니까 말이다.” 같은 책 173쪽이다.
사족 2)
김수영(1921~1968)은 서울에서 태어나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연극연구소에서 연출수업도 받고, 해방되자 귀국하여 연희전문 영어과에 편입하여 공부하다가 그만두고 박인환이 경영하는 고서점 마리서사에서 여러 시인들을 만나 시에 심취하였고, 1949년 신시론 동인지<<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아메리카 타임지>, <공자의 생활난>을 발표하는 등 시인의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어찌 보면 불우한 삶을 살다 간 시인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지 않을 수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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