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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의 <저녁 6시>

시평

by 웅석봉1 2022. 12. 2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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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

 

저녁이 오면 도시는 냄새의 감옥이 된다

인사동이나 청진동, 충무로, 신림동,

청량리, 영등포 역전이나 신촌 뒷골목

저녁의 통로를 걸어가 보라

떼지어 몰려오고 떼지어 몰려가는

냄새의 폭주족

그들의 성정 몹시 사나워서

날선 입과 손톱으로

행인의 얼굴을 할퀴고 공복을 차고

목덜미 물었다 뱉는다

냄새는 홀로 있을 때 은근하여

향기도 맛도 그윽해지는 것을

냄새가 냄새를 만나 집단으로 몰려다니다 보면

때로 치명적인 독

저녁 6, 나는 마비된 감각으로

냄새의 숲 사이 비틀비틀 걸어간다.

 

이재무 시인의 <저녁 6> 전문

 

 

*어설프지만 해설해 보자.

 

시의 제목은 저녁 6시인데 시 내용은 온통 냄새로 가득하다. 저녁 6시가 냄새로 도배되고 있다. 상상해본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 오후 6시경 시인은 퇴근길에 약주 한잔 걸치고 인사동, 청진동, 충무로를 걸어 나간다. 또 어떤 날은 신림동, 청량리, 영등포 역전이나, 신촌 뒷골목까지 돌아다녀 본다.

 

그때 고깃집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그 냄새가 혼자라면 그래도 향기나 맛이라도 있겠는데 냄새가 떼거리로 몰려다니면 이내 냄새는 고약한 폭주족이 된다. 날선 입과 손톱으로 거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할퀴고 발로 차고 목을 물고 뜯고 뱉는다. ~ 역겹기 한량없다.

 

그래서 시인은 마비된 감각으로 냄새의 숲속을 비틀거리며 걷는다. 그래서 시인은 술이 확 깬다. 그러니 시인은 그 아까운 돈으로 마신 술이 아깝다. 시인은 오리배와 청둥오리 사이에 길항과 반목과 주저와 회의를 기록해본다. 그것이 시인의 시다.

 

시인과 철학자는 동질이다. 시도 철학도 아리송하고 허무맹랑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시집은 얇고 철학책은 두껍다. 그럼, 시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한파에 묶여 있는 플라스틱 오리배들 곁으로 청둥오리 가족이 한가롭게 유영을 즐기고 있다. 오리배는 현실이고 청둥오리는 이상이다. 오리배와 청둥오리 사이에서의 길항과 반목과 주저와 회의를 기록해온 것이 내 시가 아니었을까? 이것 때문에 내 시의 표정이 다소 우울하고 어두운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시집 <<저녁 6>> 152~153쪽이다.

 

이재무 시인은 1958년 충남 부여 출신이다. 2020년에 <<데스벨리에서 죽다>> (천년의 시작 )라는 시집을 12번째 출간한 중견 시인이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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