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리고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공광규 시인의 <소주병> 전문
*
술의 종류는 다양하다. 소주. 양주. 맥주. 백주. 청주. 포도주. 막걸리 등. 그중에서 소주는 막걸리와 함께 서민의 술이다. 막걸리에 사이다를 타면 <막사>가 되고 소주에 맥주를 섞으면 <소맥>이 된다.
그 옛날 우리 술꾼들은 그렇게 마셨다. 왜? 그것이 경제적이었으니까. 고딩 시절에 전포동에서 자취할 때 나는 잔 소주를 가끔 선생님들 몰래 숨어서 즐겼다. 그 시절이 그립다. 그리우니 보고 싶다.
우리 집사람은 아시는 대로 3남 2녀의 막내딸이다. 고향에서 농부로 사시는 처남댁은 소주를 좋아하셨다. 그것도 대병 소주만 드신다. 그래서 가끔 고향 갈 때 대병을 사 들고 가기도 했다. 연세가 팔순에 가까우니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나도 청탁불구(淸濁不歐)하고 마신 술꾼이었다. 그래서 술에 관한 한 자신있었다. 그래서 술에 관한 시들을 즐겨 읽는다. 각설하고,
소주병은 소주를 담는 병이다. 두 홉들이도 있고 네 홉들이도 있고 한 되들이도 있다. 보통은 두 홉들이지만, 그런 소주병은 자기를 비워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다른 사람을 데워준 빈 병은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니고 때로는 남의 발길에 차이기도 한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하였으니 알고 보니 그 소주병은 우리들의 아버지였다. 술꾼들이여 소주병 함부로 차거나 던지지 마라. 너는 언제 한 번이라도 남을 위해 속을 비워주었더냐.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제 역할을 못 하는 생명체나 무생물이 없더라. 우주 만물은 저마다 할 일이 있나니,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처럼, 마치 공광규의 <소주병>처럼.
위 시는 공광규(1960년 충남 청양 생) 시인의 시집<<소주병>>(실천문학사, 2004)의 주제 시다.
시인은 1986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하여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담장을 허물다>> <<금강산>> 등 많은 시집의 저자요, 현재 아동 문학가로도 활동 중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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