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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삿갓> 228

서평

by 웅석봉1 2026. 4. 1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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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르손(1853~1919), 스페인 국민화가.

 

소설 김삿갓228

 

김삿갓은 네 명의 늙은이들을 발견(發見)하는 순간, 불현듯 상산(商山)의 사호(四皓)가 연상되었다. 그 옛날 춘추(春秋) 전국시대(戰國時代), 상산(商山)이라는 산속에 네 명의 호호백발(皜皜白髮) 신선(神仙)들이 살고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상산(商山)의 사호(四皓)라고 불러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네 명의 늙은이(老人)들은 신선(神仙)이라고 부를 만큼 인품(人品)이 고상(高尙)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겨우내 두더지 모양으로 방안(房內)에만 파묻혀 있다가, ()이 무르익어 오는 바람에 회춘(回春)을 즐기려고 술추렴을 나온 늙은이(老人)들임이 분명(分明)해 보였다.

 

아무려나 김삿갓은 요기(療飢)는 해야 하겠기에, 염치불고(廉恥不顧)하고 그들 앞으로 다가와 정중히 인사(人事)를 올리고 이렇게 말했다.

 

<소생(小生)은 지나가던 나그네()올시다, 어르신네들 청유(淸遊)하시는데 파흥(破興)이 될까 염려(念慮)스럽습니다만, 요기(療飢)를 좀 했으면 싶사옵니다,>

 

늙은이(老人)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몸집이 땅딸보 같은 늙은이(老人)가 김삿갓을 이렇게 나무란다.

 

<이 사람아! 남의 술좌석(酒席)에 뛰어들어 요기(療飢), 구하려거든, 우선 통성명(通姓名)부터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몹시 귀찮게 여기는 말투였다. 김삿갓은 되게 까다롭구나싶었지만, 나이, 대접(待接)을 하느라고 머리()를 다시금 수그려 보였다.

 

<죄송합니다, 소생(小生)의 이름은 김삿갓이라고 부르옵니다,>

<? 김삿갓? ……, 그런 쌍스러운 이름이 어디 있단 말인가?>

 

땅딸보가 호들갑을 떨어 보이자, 텁석부리 늙은이(老人)가 친구(親舊)를 넌지시 나무란다.

 

<이 사람아! 개똥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삿갓이 뭐가 쌍스럽단 말인가? 무식(無識)한 가문(家門)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여보게 들 안 그래?>

 

우리나라 속담(俗談)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이름이 쌍스럽다고 말하는 땅딸보 늙은이의 언사(言辭)도 비위(脾胃)에 그슬렸지만, 더구나 무식(無識)한 가문(家門)이니 어쩌니 하는 텁석부리 늙은이의 행실(行實)은 괘씸하기까지 하였다.

 

밥술이나 먹는다고 자기네 동네에서는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떵떵거리던 버릇이 그대로 노출된 증거(證據)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김삿갓은 아니꼽기 짝이 없었지만, 그 정도(程度)의 모욕(侮辱)은 흔히 당해 오던 일이기에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려니까, 이번에는 목덜미에 밤 알 만한 혹이 달려, 있는 늙은이가 김삿갓을 달래듯이 이렇게 말한다.

 

<젊은이의 성명(姓名)을 알았으니, 이제는 우리도 자기소개(自己紹介)를 해야 할 게 아닌가, ……, 여기 앉아 계신 분은 승 진사(承進士) 어른이시고, 저기 앉아 있는 텁석부리 영감은 조 좌수(趙座首)이시고, 그 옆에 앉아 있는 영감은 문 첨지(文僉知)이시고, 나 자신은 오 향수(吳鄕首)라고 부르는 늙은이(老人)일세, 우리, 네 늙은이(老人)는 모두가 막역(莫逆)한 친구(親舊), 겨울() 동안에는 추워서 꼼짝하지도 못하고 있다가, 오늘 처음으로 봄맞이(賞春) 술추렴을 나온 것이라네.>

 

그러자 이번에는 승 진사(承進士)라는 늙은이(老人)가 말을 가로막고 나온다.

<우리들은 이제부터 시회(詩會)를 즐기려는 생각이라네, 젊은이도 글을 배웠거든 우리와 함께 시()를 즐겨 보지 않으려는가.>

 

설명(說明)을 들어 보니, 오늘의 모임은 그 늙은이(老人)들의 시회(詩會)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늙은이(老人)들과 어울릴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아니올시다. 저는 글을 배우지 못해 시()를 지을 줄 모르옵니다. ()이나 몇 잔 얻어먹고 가게 해 주시옵소서.>

 

<술과 안주(按酒)는 넉넉하니까 아무 걱정 말고 맘대로 먹게나, ……,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부터 시회(詩會)를 시작할 테니 그리 알게.>

 

승 진사(承進士)가 그렇게 말하자, 땅딸보 문 첨지(文僉知)가 시()에는 자신(自信)이 없는지 엉뚱한 소리를, 들고 나온다.

 

<나는 젊었을, 때에는 시()를 곧잘 지었지만,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시상(詩想)이 떠올라야 말이지. 계집에, 대한 관심만은 전()과 다름이 없지만, ()만은 그렇지가 못하단, ~.>

 

이번에는 텁석부리가 말한다.

 

<이 사람아! 계집에, 대한 관심(關心)이야 누군들 없을라~. 그런 관심(關心)조차 없다면 그야말로 살아 있는 송장(屍體)이게?>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2), 244~246-계속-(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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