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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삿갓> 182

서평

by 웅석봉1 2026. 2. 1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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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1887~1984),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화가.

 

 

<소설 김삿갓> 182

 

김삿갓은 혼자 심심하던 판인지라, 생면(生面) 부지(不知)의 나그네를 반갑게 맞았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잠자리를 구하신다구요? ……, 이 산밑에 공맹재(孔孟齋)라는 서당(書堂)이 있는데, 제가 바로 그 서당의 훈장(訓長)이올시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고맙습니다, 눈이 많이 오는데 잠자리를 구하지 못해 어떡하나 싶었더니, 마침 잠자리를 제공해 주신다니 여간 고맙지 않습니다,>

 

나그네는 김삿갓을 따라 내려오면서 고개를 몇 번이나 수그려 보이는 것이었다. 나그네의 나이는 사십 세가량 되었을까. 의관(衣冠)을 단정하게 갖춘 품이 첫눈에 보아도 선비 냄새가 물씬 풍겼다.

 

<어디로 가시는 길인지, 몹시 늦어 셨습니다,>

 

<안변(安邊)에 계신 어머님을 뵈려 가는 길인데, 중도(中途)에서 길을 잘못 들어 저물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서당(書堂)에 내려와 인사를 나누고 나서, 김삿갓은 저녁을 지어 주려 하였다. 그러자 나그네는 손을 내저으며 이렇게 말한다.

 

<집에서 가지고 떠난 도시락을 조금 전에 막 먹어서 배가 부르옵니다, 저녁 걱정은 마시고 하룻밤 재워만 주십시오>

 

<그래도 저녁을 굶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사양(辭讓)이 아니옵고 배가 불러 아무것도 못 먹겠습니다,>

 

<정말로 그러시다면 술이라도 한잔 나누십시다,>

 

김삿갓은 나그네와 함께 술잔을 나누며 속으로, ‘나의 후임자(後任者)로 이 사람을 모셔 오도록 교섭(交涉)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하여 술이 거나하게 취해 오자 공맹재(孔孟齋)와 자신의 실정(實情)을 소상(昭詳)하게 말해 주었다.

<매우 어려운 부탁이오나, 이 서당(書堂)을 좀 맡아 주실 수 없겠습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나그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김삿갓에게 이렇게 대답(對答)하는 것이었다.

<저는 어머니를 뵈려 가는 길인데 어찌 이곳에 머무를 수 있으오리까!>

 

<그러지 마시고 서당(書堂)을 꼭 좀 맡아 주시옵소서>

<암만해도 내일은 떠나야 합니다>

 

<날씨가 춥고 눈이 많이 와서 못 떠나시옵니다>

 

그 모양(模樣)으로 김삿갓은 나그네를 붙잡아 두려고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연방 술을 권해 오다가, 문득 눈 오는 바깥 풍경(風景)을 내다보며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지었다.

 

비래편편삼월접(飛來片片三月蝶), 답거성성육월와(踏去聲聲六月蛙),

한장불거다언설(寒將不去多言雪), 취혹이류경진배(醉或以留更進盃),

 

*해석하면

 

날리는 눈송이는 춘삼월 나비 같고, 밟으면 발밑에서 개구리 소리 나네,

추워서 못 가신다고 눈을 핑계 대며, 혹시나 머무를까 다시 술잔을 권하오.

 

김삿갓은 즉석에서 휘갈긴 시()를 말없이 나그네에게 내밀어 보였다. 나그네는 김삿갓의 시()를 받아 들고 오랫동안 감상(感想)하더니, 문득 옷깃을 바로잡으며 이렇게 감탄(感歎)하는 것이었다.

 

<선생의 시() 에는 참으로 경탄(敬歎)을 마지아니합니다, ‘날리는 눈송이는 봄 나비 같고, 발밑에서는 개구리 소리가 난다라고 했으니, 그 얼마나 절묘(絶妙)한 비유입니까. 떠돌아다니는 소문에 의하면, 영월 땅에서 김삿갓이라고 하는 비유(比喩) ()를 잘 쓰는 시인이 있다고 들었지만, 제아무리 김삿갓이기로 비유 시()를 이처럼 절묘하게 쓸 수는 없을 것이 옵니다.>

 

김삿갓은 자신의 정체(正體)가 드러난 것만 같아 가슴이 뜨끔하였다. 그리하여 시치미를 떼고 의식적(意識的)으로 큰소리를 내어 호탕(豪宕)하게 웃었다.

 

<하하하, 영월 땅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이러나저러나 졸시(卒詩)에 대한 칭찬이 너무도 과람(過濫)하십니다,>

 

<아니올시다, 저는 인사치례(人事致禮)로 드린 말씀이 아니옵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고백(告白)입니다. 이 시는 기구(起句)와 승구(承句)의 비유법도 절묘하지만, 전구(轉句)와 결구(結句)에서는 저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붙잡아 두시려는 간곡한 심정(心情)이 여실히 나타나 있어서, 저는 가슴이 뭉클해 올 지경입니다,>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2), 135~138-계속-(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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