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말>
재작년 가을, 퇴직(退職)을 앞둔 직장동료들과 내 생애(生涯) 최초의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하는 동안 가이드의 인상(印象) 깊은 안내와 아름다운 여정(旅情)에 취했다.
그 순간들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충동(衝動) 때문에 무조건 수첩(手帖)에 가이드의 육성(肉聲)을 깨알같이 기록하였다. 그러고는 일상(日常)으로 돌아왔다.
해를 넘겼다. 나도 어느덧 은퇴라는 전환(轉換)의 물결 속에서 지난해 상반기(上半期)를 보내고 있었다. 장마가 시작되는 비 내리는 날 아침에, 나는 크나큰 충격(衝擊)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불현듯 아스라이 그때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 따뜻한 봄날, 듬직한 대학노트 한 권을 샀다. 소설(小說)을 쓰기 위해서였다. 두세 페이지를 써 내려가다가 멈추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취직 공부를 해야 해’ 나는 그렇게 대학노트를 덮었다.
그 후 참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모든 아픔을 운명(運命)으로 돌리고 그동안 방황한 내 가슴을 열어보고 싶었다. ‘그래, 지금이야’ 그날로 나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한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흰 눈이 펑펑 내릴 때까지, 재작년 유럽 여정(旅情)의 순간들과 많은 세월 동안 쌓인 가슴의 소리를 글로 써 내려갔다.
6개월여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기나긴 방황(彷徨)의 들판 길이었다. 가슴은 타오르는데 손끝은 떨고만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땐 산속을 헤매고 강변을 거닐었다. 때로는 캄캄한 밤하늘의 별을 세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60년 만에 백호(白虎)의 새해가 밝았다.
역사(歷史)는 되풀이되는가? 샐러리맨들은 해마다 봄이면 새 식구를 맞이하고, 연말이면 은퇴(隱退)하는 선배님들의 퇴임식장에서 축배(祝杯)를 든다. 그러고는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퇴장(退場)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한번 산에 오르면 언젠가는 내려와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음~, 정상(頂上)에 올라서 있는 당신은 하산(下山)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미지(未知)의 산을 오를 때에는 안내(案內) 가이드가 있고, 이름 모를 흥분(興奮)도 되고 길도 비교적 반듯하게 나 있어 보인다. 또한, 같이 오르는 동료들도 많다. 특히나 오를 때는 초장(初場)이니 힘도 남아있다.
그러나 하산(下山)할 때는 자칫하면 뿔뿔이 갈라진 버려진 몸이 되기 십상이다. 가이드도 앞서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길도 여러 갈래다. 미끄럽기도 하다. 그런데 다가, 다리에 힘도 많이 빠졌다. 자칫하면 넘어질 수도 있다. 조심(操心)할 일이다.
샐러리맨들이여! 이를 대비하여 힘을 비축(備蓄)하라, 죽도록 일만 하지 말라는 말이다. 아직도 그대들은 할 일이 많고, 시간의 여유도 많다는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내가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는 귀중(貴重)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생각하니, 너무나 내 중심주의였다. 오직 나를 위해 살았으며, 그때, 그곳을 위해 살았다.
그러나 인생은 나만이, 오늘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도 있고, 적도 있고, 우리도 있다. 또한 어제도 있고, 내일도 있고, 먼 미래(未來)도 있겠다.
그동안 나에게도 조그만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오랜 친구인 담배도 끊었고, 열흘간의 단식(斷食)으로 생체(生體)의 변화도 경험하였으며, 가끔은 108배로 하루를 시작하는 지혜(智慧)도 배우게 되었다.
그러기 전에 6개월이라는 허망한 혼돈(混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직도 방황(彷徨)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 우리 주변(周邊)에는 이 추운 한겨울에도 수많은, 중 늙은이 가장(家長)들이 생명과도 같은 그 소중한 일자리를 잃고 이 회사, 저 가게를 기웃거리며 추운 한겨울을 헤매고 있다.
- 다음 시간에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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