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자(白磁)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담은 그릇이 있다. 무결(無缺)의 깨끗함을 한껏 드러내는 그릇, 백자다. 고향의 우거(寓居)에 청화백자(靑華白磁) 물병이 한 개 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 행사 때에 보아온 것이니 조선시대의 백자임이 틀림없다.
나이가 들수록 백자에 시선이 감은 왤까? 조선시대의 대표 자기(磁器)이자 지금까지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백자가 아닌가. 백자의 특징은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담백하고 은은한 느낌은 우리 민족의 특징을 상징하고 있지 싶다. ‘여백의 미’라고 할까, 쳐다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중략>
무결의 깨끗함을 자랑하는 백자는 점력(粘力)이나 자기화 과정에 있어 재료인 흙을 다루기가 까다롭다고 한다. 여느 흙에 비교해 입자가 작고 고운 흙으로 만든다. 백자가 단단하고 쉽게 깨지지 않는 이유다. 원재료인 흙이 이렇게 가마에 불을 땐 뒤 열을 식히는 과정에서 금이 가는 병렬 현상이 적다.
우리 음식처럼 국물이 많은 요리를 담아도 스며듦이 없다. 그뿐일까, 흰빛의 그릇이라 어떤 요리를 담아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또한, 백자의 제작 과정은 독특하다. 가마에서 불을 땔 때, 완전 연소가 되는 산화 과정이 아니라 불안전 연소인 환원 과정으로 도자기를 굽는다.
환원 과정으로 불을 때야 이산화탄소가 방출되면서, 유약과 수지에 화학 반응을 일으켜 백자 특유의 흰빛을 띤다. 불완전연소인지라 도자기를 만든 이도, 그 색과 모양을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달항아리나 사발이 완벽한 모양새가 아니고 어딘가 기우뚱한 까닭을 어렴풋이 알 듯도 하다. 백자가 사람의 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마에 넣기 전까지 인력으로 만들었다면, 그 후에는 자연의 힘으로 완성된다는 오묘한 원리다.
따스한 흰빛에 군더더기 없는 단순한 형태의 아름다움이란 조선백자 미의 결정이 아니랴. 청화(靑華) 문양을 넣더라도 채우기보다는 여백을 살린 자기가 아닌가, 조선백자만의 미적 감각이다.
청화백자 물병이 청포를 차려입은 선비로 내게 옛이야기를 걸어온다. 시대와 풍습을 초월한 아득한 옛이야기에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 무덤덤하게 새하얀 백자의 선은 단순함이 주는 세련미의 극치다.
삼동(三冬)에 바라보아도 따스함이 묻어난다. 오랜 시간 우리 집에 있어 온 청화백자, 언제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 정감 가는 그릇이다.
<백자(白磁) 전문.>
*작가 소개
김철수(金哲洙, 1949~현재) 작가는 경남 거제시 하청면 대곡리 황덕도(黃德島)에서 출생하여, 농협 거제시 지부장과 여의도 지점장, NH투자증권 전무이사를 역임하고, 재경 거제시 향우회 회장, 서울 등촌교회 장로, 거제 수필문학회원으로 재직 중이며,
수필집 《바다의 노래》(2016), 《절규》(2017), 《숭어, 하늘을 날다》(2020), 그 외 다수의 공동 시집이 있다.
지금 서울과 고향 거제를 오가며 작품활동과 농사에 전념하고 있다. 특히 김 작가는 섬 출신으로 섬과 수산물에 대한 애정이 작품 속에 녹아있는 농어촌 작가임이 분명하다. 언제나 바다를 믿고 바다를 노래하는 작가, 작가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사족
권갑하(權甲河, 1958년~ 현재, 농민신문사 논설실장 역임, 현 강남 문인협회 회장) 시인은 《마음 꽃 달항아리》(2025년 출간)라는 작품(시조집)에서 아래와 같이 노래하였다.
-혼불 <둥근 가마 속에/ 생을 밀어 넣는다// 불꽃처럼 타오른 혼,/ 맑고 희게 피어난// 깨져도 꺼지지 않는/ 영원의 빛 품었네//>
-열망 <아무 말은, 않지만/ 숨결 이리 뜨겁다// 비운 듯 앉아서/ 끝없이 너를 안고// 단 한 번 눈길만 줘도/ 내 안의 빛 터지리//>
-여백 <모두 지워버리고/ 끝내 말하지 않는// 비워 영원을 좇는/ 허공의 마음이여// 감아도 사라지지 않는/ 그리움의 잔영들>
-도량 <입 닫고 가슴 여니/ 너나없이 좋아라// 속 다 비우고 나니/ 비로소 차오르는// 넓고도 깊은 그 마음/ 나를 가만 울리네>
-소망 <고요히 숨을 고른/ 둥글고 빈 마음으로// 그대 삶 깊은 결에/ 맑은 기도 올리나니//그대 안/ 환히 피어나는/ 따뜻한 위안이기를>
**김철수 씨와 권갑하 씨의, 산문(散文)과 운문(韻文)의 만남이 조화롭다. 달항아리도 백자다. 김철수 작가도 권갑하 시인도 모두 농협 출신이다. 은퇴한 농협 출신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고무적(鼓舞的)인 현상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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