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시절을 회상하며(종교와 정치)
사람 사는 세상은 인연(因緣)으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인연에는 혈연, 학연, 지연과 직연이 있다. 혈연(血緣), 학연(學緣), 지연(地緣)은 다 아실 테고. 직연은 좀은 생소하겠다. 직연(織緣)은 사전에는 없는, 누군가가 지어낸 말로, 같은 직장에서 같은 사무실에 근무한 인연을 말한다.
나는 직장에서 은퇴하고도 20여 년이 다 되어가지만, 요즘도 가끔 직장 시절의 꿈을 꾼다. 나만 그런가? 어허허. 특히 농협이란 조직은 퇴직자들의 모임이 타 직장에 비하여 유달리 활발하다. 사단법인 퇴직 동인회(同人會)가 있어 각종 경조사나 행사 등이 수시로 공시된다.
내가 농협(農協)에서 정년을 맞았다는 것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 시절에 겪고 느낀 사연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때는 1,998년 4월, 내 나이 마흔여덟, 고향인 경남 산청(山淸)에서 지부장 생활을 마치고 서울 본부 감사실(鑑査室)로 이동하게 되었다.
기껏해야 경남, 부산, 울산에서만 살아온 시골 촌놈이 여차하면 코도 베여간다는 그 살벌한 서울로 이주(移住)하여 산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결정이 아니었다. 용단(勇斷)이 필요했다. 주지하시다시피 나는 일남 일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당시 아들은 서울에서 군 생활을, 딸은 아빠 직장 따라 진주(晉州)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퇴근하여, 우리 가족이 서울 가서 살면 어떨까 하고 말을 꺼내니 딸은 대찬성이었다. 찬성 이유는 서울 살면 유명 연예인(演藝人)들을 볼 수도 있고, 만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단순, 순진한 발상이긴 하다만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우리 부부는 망설였지만 ……,
또한 군 생활을 하는 아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보는 등, 가족회의(?)를 거쳐 결국 서울 상경을 결정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제 후임으로 고등 동기인 최 훈구 씨에게 업무를 인계하였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청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최(崔) 동기는 은퇴 후인 2020년에 심장마비(心臟痲痺)로 안타깝게도 불귀의 객이 되었다. 고인(故人)의 명복을 빈다.
한편, 내가 서울로 진출하게 된 또 하나의 원인은 당시 농협의 상임감사(監事) 정대근 님의 추천이 있었다. 그분은 경남 밀양의 모(某) 지역농협 조합장을 하시던 분이셨는데, 그 해에 그분이 본부 감사로 피선(被選)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분과는 내가 경남도(道) 본부에 근무할 당시에 가끔 만나서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서론이 좀 길었다, 어느 기관이나 대동소이(大同小異)하지만 농협도, 감사실은 집행부인 회장과는 별도의 조직이다. 회장(會長)도 감사(監事)도 모두 일선 조합장들이 직접 선거로 선출한다, 아무튼 감사실은 농협의 주요 업무를 총체적(總體的)으로 감시(監視) 감독하는 기구다.
다시 말하면 회장을 포함한 농협 전체 업무처리의 잘잘못을 검사, 감독(監督)하는 일이 감사실의 주(主) 업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회장 부속실을 포함한 중앙 본부의 각, 부서들이 처리하는 업무는 물론이요, 일선 영업점의 업무도 총괄적으로 감독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본부 부서의 감독이야 별문제가 없었으나, 1천여 개가 넘는 일선(一線) 영업점이 문제다. 영업점(營業店)의 업무처리를 확인하려면, 전국 각지로 출장을 가야 했다. 출장은 보통 일주일 단위로, 작은 영업점은 2~4명 큰 영업점은 5~7명의 인원이 단체(團體)로 동행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감사실의 출장팀은 움직이는 작은 사무실인 셈이다. 사무실은 인화(人和)가 생명이다. 《맹자》라는 책에 <천시불여지리(天時不如地利), 지리불여인화(地利不如人和)>라는 말이 있다. 이는 나라를 지키고 군사를 쓰는데, 중요한 것이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이 천시와 지리와 인화인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화라는 말이다. 지극히 지당한 말씀이다.
현지 출장은 팀장 격인 감사 수반(首班)이 반장이 되어 움직인다. 월요일 오전에 영업점에 들어가서 먼저 시재금(현찰) 조사부터 한다. 이때 현찰이 장부상의 금액과 일치하지 않으면 감사원이건 피감사무소 직원이건 모두 비상(非常)이 걸린다.
그다음으로는 제반 업무처리 사항들을 관련 장부와 대조(對照)하면서 확인한다. 일과가 끝나면 가까운 여관에서 같이 잠을 자고, 다음날 다시 피감사무소로 출근하여 감사를 수행하고, 근무시간이 끝나면 또다시 감사원끼리 생활하고, 6일(당시는 주5일근무 이전이었다) 동안 같이 이런 생활이 반복되는데, 문제는 감사원(내부 명칭은 검사역)들끼리의 대화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감사실 직원들은 전국(全國)에서 모였으니, 출신이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등 다양하고, 인격이나 소양이나 종교나 정치 성향 등도 차이도 있었다. 가령, 종교(宗敎)만 하더라도 너는 불교, 나는 기독교, 그는 천주교 등으로 달리하였고, 정치(政治) 성향도 제각각이다. 너는 더불당, 나는 국힘당, 그는 개혁당 등등으로 갈린다.
그래서 이런 종교나 정치 문제로 논쟁(論爭)을 벌이면, 하룻밤도 모자라고, 결론(結論)도 나질 않는다. 대부분이 그렇다, 급기야는 격론이 벌어지고 감정까지 격해지니, 인화가 될 리가 없다. 그래서 우리 검사역들은 종교나 정치 문제만큼은 일체, 거론하지 말자고 암묵적(暗黙的)으로 합의한다. 그런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좋은지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차이로 논쟁을 벌인다는 것은 소모적이고 인화에 큰 장애(障害) 요소가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우리 단톡방도 건강(健康)이나 친목(親睦), 인화(人和)를 위한 공간일 것이니, 정치나 종교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란 생각에서 이 글을 올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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