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 발톱은 왜 생길까?
잘못된 방법(方法)으로 발톱을 깎거나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는 것이 원인이다. 발톱을 너무 바짝 깎으면 발톱에 힘이 가해졌을 때 발톱 끝의 피부가 들뜰 수 있다. 발톱 사이 피부가 들뜨면 발톱이 똑바로 자라지 않고, 양 끝이 안으로 말려 들어가면서 내성(內省) 발톱이 생길 수 있다.
발톱 길이는 엄지발톱과 같거나 1밀리미터 정도 긴 것이 적당하고, 모서리가 둥글지 않은 네모 모양으로 자르는 것이 좋다. 발 모양(模樣)에 맞지 않는 불편한 신발을 신거나 무지외반증(拇趾外反症)이 있으면 둘째 발가락으로부터 엄지발가락에 힘이 가해진다. 무리하게 힘이 가해지면 발톱이 곧게 자라지 않고 양 끝이 안으로 말려 들어간다.
내성 발톱이 있으면 그 부분의 통증(痛症)으로 자세나 걸음걸이가 나빠진다. 그러면 요통(腰痛)으로 이어지거나 넘어질 위험이 있다. 심하면 피부과에 가서 발톱 교정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 (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90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2월 17일(병인/4월 7일)
맑다. 따뜻하기가 초여름 같다. 아침에 상선(上船, 지휘선)에 연기에 그을리는 일을 마치고 사정(射亭)에 올라가 각 부서의 공문을 작성하여 보냈다. 오전 10시쯤 우수사 이억기(李億祺)가 들어왔다. 행수 군관 정홍수(鄭弘壽)와 도훈도(都訓導)를 군령으로 곤장 90대를 치도록 결정했다.
이홍명(李弘明)과 임희진(任希璡)의 손자도 왔다. 대나무로 총통을 만들어 왔기에 시험으로 쏘아 보니, 소리만 요란하고 별로 쓰일 데가 없으니 우스웠다. 우수사가 겨우 20척의 전선을 가지고 왔는데, 생각보다 적어서 한심스럽다. 순천 부사 권준(權俊)과 우조방장 어영담(魚泳潭)도 와서 활 5 순을 쏘았다.
2월 18일(정묘/4월 8일)
맑다. 아침에 배(裵) 첨지와 가리포 첨사 이응표(李應彪)가 왔다. 아침을 먹은 뒤에 사정으로 올라가 해남 현감 위대기(魏大器)에게 명령을 어긴 죄를 물었다. 우도의 여러 장수들과 업무를 협의하고, 활 두어 순을 쏘았다. 오후에 우수사가 왔다. 수사 원균(元均)과 같이 많이 취하여 하나하나 세세한 얘기를 하지 못했다. 저녁 8시경 가랑비가 밤까지 내렸다.
2월 19일(무진/4월 9일)
가랑비가 종일 내리고 날씨는 몹시 더웠다. 사정에 올라 잠시 홀로 있는데 우조방장 어영담(魚泳潭)과 순천 부사가 오고, 이홍명(李弘明)도 왔다. 잠시 후에 손충갑(孫忠甲)이 왔다. 그를 불러 왜적을 토벌하던 일을 물었더니, 강개(慷漑)함을 이길 수가 없다.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날이 저물어 내려왔다. 변존서(卞存緖)가 본영으로 갔다.
2월 20일(기사/4월 10일)
안개 같은 이슬비가 걷히지 않는다. 몸이 불편하여 종일 나가지 않았다. 우조방장과 첨지 배경남(裵慶南)이 와서 이야기하였다. 아들 울(蔚)이 우 영공 이억기(李億祺)의 배에 갔다가 많이 취해서 돌아왔다.
2월 21일(경오/4월 11일)
맑고 따뜻하다. 몸이 매우 불편하여 온종일 신음(呻吟)했다. 순천 부사와 우조방장 어영담(魚泳潭)이 와서 ‘견내량에 복병한 곳으로 가서 자세히 살펴보고 왔다’고 보고했다. 청주 의병장 이봉(李逢)이 ‘순변사 이빈(李濱)에게 육지의 사정을 상세히 일러 주고서 해거름에 돌아갔다’고 보고했다.
오후 6시경에 벽방(碧方, 통영시 광도면 벽방산)의 척후장 제한국(諸韓國)이 와서 ‘구화역(仇化驛, 통영시 광도면 노산리) 앞바다에 왜선 8척이 정박하고 있다’고 알렸다. 그래서 삼도(三道)에 명해 진격하자는 약속을 했다. 그러고 원균의 군관 제홍록(諸弘祿)의 보고를 기다렸다.
2월 22일(신미/4월 12일)
새벽 2시쯤 제홍록(諸弘祿)이 와서 ‘왜선 10척은 구화역(仇化驛)에 이르렀고, 6척은 춘원포(春院浦)에 와있다. 날이 이미 새어 미처 따라가 격파하지 못했다’고 보고 해서 다시 정찰하라고 일러서 돌려보냈다.
주) 제한국(諸韓國, 1566~1636)은 고성과 통영, 거제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갑오년에 이순신에게 와서 종사하였다.
* 2월 23일부터 2월 27일까지의 일기는 빠져있다.
2월 28일(정축/4월 18일)
맑다. 아침에 사정으로 올라가 종사관 정경달(丁景達)과 종일 이야기 했다. 장흥 부사 황세득(黃世得)이 들어오자, 우수사 이억기(李億祺)가 부사의 죄를 처벌했다.
주) 장흥 관아에서 전선과 각 진영의 도목장을 보내지 않아 이억기(李億祺)가 장흥 부사를 처벌했다. 황세득(黃世得, 1537~1598)의 부인이 이순신 부인 방씨(方氏)의 사촌 언니이다.
*당시 군율이 엄격했음을 보여 주는 대목들이다.
2월 29일(무인/4월 19일)
맑다. 종사관과 함께 아침을 먹고 술도 한잔하면서 종일 이야기했다. 장흥 부사도 함께했다. 벽방(碧方)의 척후장 제한국(諸韓國)이 ‘적선 16척이 소소포(昭所浦, 고성군 마암면 두호리)로 들어왔다’고 보고하여 각 군에 영(令)을 내려 경계를 강화하게 했다. -108)-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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