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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95

서평

by 웅석봉1 2025. 3. 1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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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과 기관지는 무슨 일을 할까?

 

공기가 안전하게 드나들게 해주고 먼지와 세균(細菌)을 몸 밖으로 몰아낸다. 추운 날 창 유리(琉璃)에 입김을 뿜으면 입김 닿은 부분이 부옇게 변한다. 뱉은 숨에 수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기관과 기관지는 들어 마신 공기가 폐에 도달할 때까지 적당한 습기(濕氣)를 유지(維持)하고, 공기에 섞인 먼지 등의 이물질을 걸러주는 역할(役割)도 한다.

 

기관과 기관지는 안쪽에 끈적끈적하고 투명(透明)한 액체가 있어 항상 젖은 상태를 유지한다. 이 액체로 작은 먼지와 세균, 바이러스 등을 흡착(吸着)해 폐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준다.

 

기관과 기관지 안쪽은 가느다란 털 모양의 섬모상피 세포 즉 섬모(纖毛)로 이루어져 있다. 섬모가 포착한 이물질(異物質)을 가래로 만들어 몸 밖으로 내보낸다. 따라서 가래 색깔을 보면 병()의 종류를 알 수도 있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77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810(신묘/94)

 

맑다. 아침에 방답(防踏)의 탐후선(探候船)이 들어왔는데, 임금의 교지(敎旨)와 비변사(備邊司)의 공문과 감사 이정암(李廷馣, 1541~1600)의 편지를 가지고 도착했다. 해남 현감과 방답 첨사도 같이 왔다.

 

순천 부사와 광양 현감도 왔다. 우수사 이억기(李億祺, 1561~1597)가 청해서 그의 배로 가니 해남 현감이 술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해서 간신히 앉아서 이야기하다가 돌아왔다.

 

811(임진/95)

 

늦게 소나기가 쏟아지고 바람이 몹시 불더니 오후에 비는 그쳤으나 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몸이 심히 불편해서 온종일 앉았다 누웠다 했다. 여도(呂島) 만호 김인영(金仁英, ?~?)에게 격군을 붙잡아 오는 일로 사흘 기한을 주어 당부하고 보냈다.

 

812(계사/96)

 

맑다. 몸이 몹시 불편해서 종일 누워서 신음(呻吟)했다. 옷이 젖도록 식은땀이 나는데 억지로 일어나 앉았다. 느지막이 비가 내리다 개다 한다.

 

순천 부사와 우수사, 방답 첨사가 와서 종일 장기를 두었다. 몸이 불편했다. 가리포 첨사도 왔다. 본영 탐후선(探候船)이 들어와서 어머니께 평안하시다고 전했다.

 

813(갑오/97)

 

본영에서 온 공문을 결재해서 보냈다. 몸이 몹시 불편해서 홀로 봉창(篷窓) 아래에 앉았으나 온갖 회포가 다 일어난다. 이경복(李景福)에게 장계를 지니고 가라고 내보냈다. 송두남(宋斗男)이 군량미 300섬과 콩 300섬을 실어 왔다.

 

814(을미/98)

 

맑다. 방답 첨사 이순신(李純信)이 제사 음식을 갖추어 왔다. 우수사 이억기(李億祺)와 충청 수사 정걸(丁傑), 순천 부사 권준(權俊)도 와서 같이 먹었다.

 

815(병신/99)

 

맑다. 오늘은 한가윗날이다. 우수사와 충청 수사, 순천 부사와 광양 현감, 낙안 군수와 방답 첨사, 사도 첨사(僉使)와 흥양 현감, 녹도 만호 송여종(宋汝悰)과 이응화(李應和), 이홍명(李弘明)과 좌도 영공, 우도 영공 등이 모두 모여 담소했다. 저녁에 아들 회()가 본영으로 돌아갔다.

 

1) 송여종(宋汝悰, 1553~1609)은 신호 및 이순신 휘하의 장수로서 이순신의 장계(狀啓)를 적진(敵陣)을 뚫고 행재소에 전달한 공로로 녹도 만호가 되었다.

 

2) 815일 전라 경상 충청의 네 수사(이순신. 이억기. 원균. 정걸)가 진영에 왔는데, 이때 이순신이 전라 좌수사로서 실제 군사를 총괄했다. 제만춘 전,

 

3) 삼도수군통제사를 명하는 교서(敎書)912일에 내려지고, 101일에 받았다. 이순신은 이때부터 15972월까지 37개월 동안 한산도를 관장했다.

 

816(정유/910)

 

맑다. 광양 현감이 명절 음식을 갖추어 왔다. 우수사와 충청 수사, 방답 첨사와 순천 부사, 가리포 첨사 구사직(具思稷)과 이응화(李應和) 등이 함께 왔다. 아침에 제만춘(諸萬春)이 일본에서 나왔다고 했다.

 

) 제만춘(諸萬春)은 원균의 군관으로서 웅천의 적을 정탐하다가 왜군의 포로가 되었다. 15937월 밤에 탈출했는데 조정에서 죄를 논했으나, 풀려난 뒤 이순신의 휘하에서 공을 세웠다. -95)-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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