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개는 왜 생길까?
웃을 때 보조개는 왜 생길까? ‘볼우물’이라고도 부르는 보조개는 부모(父母)에게서 유전(遺傳)되는 경향(傾向)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보조개가 있으면 자녀(子女)도 보조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웃으면 입꼬리 당김근이라는 근육(筋肉)이 수축(收縮)해 입꼬리가 옆으로 펴진다. 얼굴 근육이 얼굴 피부로 직접 이어져 있어, 입꼬리 당김근이 수축하면 그 위에 있는 볼 피부(皮膚)도 잡아당겨지며 보조개가 생긴다.
사람은 웃는 표정(表情)뿐 아니라 화난 표정, 두려운 표정, 슬픈 표정 등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 눈과 코, 입 등을 움직여 표정을 만드는 근육을 ‘표정근(表情筋)’이라고 하는데 30종류가 넘는다. 입꼬리 당김근도 표정 중 하나다. 볼이 말랑말랑한 사람일수록 보조개가 잘 생긴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 (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71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7월 9일(신유/8월 5일)
맑다. 남해 현령 기효근(奇孝謹)이 또 와서 ‘광양과 순천이 이미 불에 타고 노략질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광양 현감 어영담(魚泳潭)과 순천 부사 권준(權俊), 송희립(宋希立)과 김득룡(金得龍), 정사립(鄭思立) 등을 보내고,
이설(李泄, 1554~1598)은 어제 먼저 보냈는데,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라 말도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본도 우수사 이억기(李億祺)와 경상 우수사 원균(元均)과 함께 이 일을 논의했다.
이날 밤에
바다 위의 달은 밝고 티끌 하나 일지 않는구나.
물과 하늘이 한 가지 빛인데 서늘한 바람이 갑자기 불어오누나.
홀로 뱃전에 앉았으니 온갖 근심이 가슴을 때리누나.
한밤에 본영 탐후선(探候船)이 들어와서 ‘실은 왜적들이 아니고, 영남 피난민들이 왜놈 옷으로 가장하고 광양으로 마구 들어가 여념 집에 불을 지르고 노략질했고, 진주성이 함락되었다는 것은 헛소리다’라고 전했지만, 진주의 정세는 그럴 리 없다. 닭이 벌써 운다.
7월 10일(임술/8월 6일)
맑다. 느지막이 사도 군관 김붕만(金鵬萬)이 두치(豆峙, 하동군 두곡리)에서 와서 ‘광양의 적들은 진짜고, 다만 왜적 100여 명이 도탄(陶灘, 하동 덕은동)에서 건너와 광양을 침범해 들어왔는데, 총통 한 발도 쏜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왜놈이 포를 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영남 우수사 원균(元均)과 본도 우수사 영공 이억기(李億祺)가 왔다. 원연(元埏)도 왔다. 저녁에 토병 오수(吳水)가 거제 가참도(可參島, 가조도)에서 와서 ‘적선이 안팎에서도 보이지 않으며’ 사로잡혔다가 도망쳐 나온 사람이 말하기를 “왜적들이 무수히 창원 등지로 가더라”고 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다 믿을 수가 없다. 초저녁에 한산도 끝 세포(細浦, 손깨 포구)로 진영을 옮겼다.
7월 11일(계해/8월 7일)
맑다. 이상록(李祥祿)이 ‘명을 이기고 먼저 떠난 여러 장수들에게’ 명령을 전하기 위해 나갔다가 돌아와 ‘적선 10여 척이 견내량(見乃梁)에서 내려온다’고 보고하므로 닻을 올려 바다로 나갔다. 적선들이 벌써 진 앞에 이르렀기에 그대로 추격하니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오후 4시쯤 걸망포(乞望浦)로 돌아와 물을 길었다. 사도(蛇渡) 첨사 김완(金浣)이 와서 두치(豆峙, 하동군 두곡리)‘나루 적의 일은 헛소문이요, 광양 사람들이 왜놈 옷으로 갈아입고 저희끼리 장난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두워질 때, 오수성(吳壽成)이 광양에서 돌아와서 ‘광양의 왜적에 관한 일은 모두 진주 등지의 피난민들이 저지른 피해로, 관아 창고는 하나같이 비어 있고 여염마을도 쓸쓸하게 되어 종일 돌아다녀 보아도 한 사람도 없다. 순천이 가장 심하고 낙안(樂安)이 그다음’이라고 보고했다.
달빛을 타고 우수사 영공 이억기(李億祺)의 배에 이르니 원균(元均) 수사와 직장(直長) 원연(元埏)도 와 있었다. 병사에 대해 의논하고 헤어졌다.
주) 왜적이 광양을 침범했다는 것은 허위 보고이고, 결국 전란이 한창인 당시 상황에서는 보고에 혼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경달(丁景達, 1542~1602, 호, 반곡, 전남 장흥 출신)의 《반곡(盤谷) 일기》, 1593.6.2.> 참조. -89)-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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