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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87

서평

by 웅석봉1 2025. 3. 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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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거나 따뜻한 걸 어떻게 느낄까?

 

누가 뒤에서 어깨를 두드리면 곧바로 알아차리는 것은 피부 센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피부에는 아플 때 느끼는 통각(痛覺)’, 무언가와 닿았을 때 느끼는 촉각(觸覺)’, 눌렸을 때 느끼는 압각(壓覺)’, 따뜻할 때 느끼는 온각(溫覺)’, 차가울 때 느끼는 냉각(冷覺)’이라는 다섯 가지 센서가 있다.

 

온각은 피부 온도(溫度)보다 높으면 따뜻하다고 느끼고, 냉각은 피부 온도보다 낮으면 차갑다고 느낀다. 온각은 약 40도까지, 냉각은 약 16도까지 인지할 수 있으며, 그보다 높거나 낮으면 통각이 작용한다.

 

다섯 가지 센서 중에서 통각의 숫자가 가장 많다. 1제곱센티미터의 피부에 무려 100~200개의 통각 센서가 포진(布陳)하고 있다. 아프면 위험함으로 위험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통각 센서가 다량 존재한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69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계사년 7(15937)

 

71(계축/728)

 

맑다. 나라의 제삿날(인종)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밤기운이 몹시 서늘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라를 생각하니 마음이 뒤숭숭하여 홀로 봉창(蓬窓, 배의 창문) 아래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이 다 난다. 초저녁에 선전관 류형이 임금의 교지를 받들고 왔다.

 

) 선전관 류형(柳珩, 1566~1615)은 의주 행재소로 가서 선전관이 되었다. 이순신의 부하로 노량해전 때 진린과 이순신을 부상까지 입어가며 구출하였고, 이순신의 전사 후 부산 첨절제사가 되었다.

 

72(갑인/729)

 

맑다. 날이 늦어서야 우수사 이억기(李億期)가 와서 선전관 류형(柳珩)을 대면하고 함께 점심밥을 먹은 뒤 헤어져 돌아갔다. 해거름에 김득룡(金得龍)이 와서 진양이 불리하다고 전했다.

 

놀라서 비통함을 참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럴 리 만무하다. 틀림없이 미친놈이 잘못 전한 말일 것이다. 초저녁에 원연(元埏)과 원식(元植)이 와서 군중(軍中)의 일을 말하니, 웃음이 나왔다.

 

) 원연(元挻, 1543~1597)은 원준량(元俊良)의 차남이고 원균의 친동생인데 원수량에게 양자로 갔고, 원식(元植)은 원균의 사촌 동생으로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經莚 參贊官)을 지냈다.

 

73(을묘/730)

 

맑다. 적선 수 척이 견내량을 넘어와 갑자기 뭍으로 올라왔다. 원통하고 분해서 우리 배들을 바다로 나가서 이들을 쫓으니, 그들도 급히 도망을 쳤다.

 

74(병진/731)

 

맑다. 흉악한 수 만여 명의 왜적이 줄지어 과시하고 있으니, 통분을 금할 수 없다. 저녁에 걸망포 (巨乙望浦, 견내량 아래 한산도 부근)로 물러나 진을 치고 잤다.

 

75(정사/ 81)

 

새벽에 척후병이 와서 적선 10여 척이 견내량으로 들어온다고 보고했다. 그래서 여러 배들을 출항해서 견내량에 이르니, 적선은 허겁지겁 달아났다.

 

거제 땅 적도(赤島)에는 말()만 있고 사람은 없으므로 말을 싣고 왔다. 느지막이 변존서(卞存緖)가 본영으로 갔다. 또 진양이 함락되었다는 긴급한 보고가 광양에서 왔다. 두치(豆恥, 하동 두곡)에서 성응지(成應祉)와 이승서(李承緖)가 보낸 것이었다. 저녁에 도로 걸망포에 이르러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87)-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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