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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83

서평

by 웅석봉1 2025. 2. 2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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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 왜 날까?

 

바이러스의 활동(活動)을 억제하고 면역세포 활동을 촉진(促進)하기 위함이다. 뇌에는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작용이 있다. 그래서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感染)되면 뇌는 체온을 올리라고 명령(命令)을 내린다. 체온을 높여 바이러스와 싸우는 면역세포의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평균 체온(體溫)36~37도다. 37.5도 이상이면발열로 본다. 체온이 높으면 면역력이 증대(增大)된다. 체온이 40도 이상이면 바이러스와 세균이 사멸(死滅)한다고 하니 열 나는 게 무조건 나쁜 일은 아니다. 열은 우리 몸이 싸우고 있다는 증거(證據)이므로 무분별하게 해열제를 먹을 필요는 없다.

 

고열이 난 뒤에는 땀이 난다. 이는 세균 및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끝났다는 신호(信號). 땀을 흘려 올라간 체온을 평상시 체온으로 돌리려는 신체(身體) 작용이다. 참고로 체온계는 이탈리아의 의사 산토리오 산토리오(Santorio Santorio)가 최초(最初)로 발명했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65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611(갑오/79)

 

비가 잠깐 내리다 개었다. 아침에 영남(嶺南) 우수사 원균에게 왜적을 토벌하자고 공문을 보냈더니 술에 취해서 정신이 없더라고 했다. 정오쯤 충청 수사 정걸의 배()로 가는데, 충청 수사가 내 배()로 와서, 앉아서 잠시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그 길로 전라 우수사의 배로 갔더니 가리포 첨사 구사직. 진도 군수 김만수. 해남 현감(縣監) 이안계 등이 우수사 이억기와 함께 술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나도 두어 잔 마시고 돌아왔다. 탐후인(探候人)이 보고하고 돌아갔다.

 

) 진도 군수 김만수(金萬壽, 1553~1607)는 세 아우(천수. 구수. 백수)와 함께 900명의 의병(義兵)을 일으켰다. 임진강에서 백수가 전사하고, 아들 광협과 함께 황해도에서 왜적을 무찔렀고, 그 후 진도 군수가 되어 한산도의 이순신과 광주의 김덕령에게 군량을 지원(支援)하였다.

 

612(을미/710)

 

비가 잠깐 내리다가 개었다. 아침에 흰머리 가락 10여 가닥을 뽑았으나, 그것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위에 늙으신 어머니가 계시니 좀 민망할 뿐이다.

 

하루 종일 홀로 있는데 사량 만호(萬戶) 이여념이 와서 만나고 돌아갔다. 10시쯤 변존서와 김양간(金良幹)이 들어왔다. 행궁의 기별(奇別)을 들으니, 동궁(東宮, 광해군)께서 평안하지 않으시다고 들었는데 아아 슬프고 걱정스럽다.

 

정승 류성룡의 편지와 지사(知事) 윤우신(尹又新)의 편지가 도착했다. 소문에 사내종 갓동(㖙同)과 철매(哲每)가 병이 들어 죽었다고 들었다. 아아 가련하다. () 해당(海棠)도 왔다. 밤에 명나라 병사 5명이 들어왔다는 것을 원균의 군관이 와서 전해주고 갔다.

 

613(병신/711)

 

맑다. 저녁나절에 잠깐 비가 내리다가 그쳤다. 명나라 사람 왕경(王敬)과 이요(李堯)가 와서 수군의 상황을 살폈고, 뒤이어 그들로부터 제독 이여송이 왜군을 물리치지 않아, 명나라 조정에서 그를 문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과 조용히 이야기하는 중에 분노할 만한 일들이 많았다. 저녁에 거제도 세포(細浦, 거제시 사등면 성포리)로 진영을 옮겼다.

 

) 왕경(王敬)과 이요(李堯)는 명나라 부총사 유정이 파견한 정세를 보고하는 병사(兵士).

 

614(정유/712)

 

비가 잠깐 내리다가 개었다. 아침밥을 먹는데 낙안 군수(郡守) 신호가 와서 보았다. 가리포 첨사를 불러 함께 식사했다. 순천 부사(府使)와 광양 현감 어영담이 왔다. 광양 현감(縣監)은 노루를 잡아 왔다.

 

전운사(轉運使) 박충간(朴忠侃)의 편지가 왔다. 경상 좌수사 이수일의 공문과 경상 우수사 원균의 공문도 왔다. 저물녘에 바람이 세게 불더니 곧 그쳤다.

 

) 박충간(朴忠侃?~ 1601)은 순검사(巡檢使)로 성곽의 건축을 담당하였다가 후에 영호남지방의 군량을 지원하였다.

 

615(무술/713)

 

비가 잠깐 내리다가 개었다. 우수사 이억기와 충청(忠淸) 수사 정걸, 순천(順天) 부사 권준과 낙안(樂安) 군수 신호, 방답(防踏) 첨사 이순신 등이 와서 제철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고 저물어서야 헤어졌다. -83)-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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