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는 어떤 질환일까?
감기는 의학적으로 급성(急性) 상기도(上氣道) 감염 질환으로 콕 집어서 하나의 질병(疾病)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목과 코를 통해 바이러스와 세균이 몸 안으로 들어오면 재채기, 콧물, 목 통증, 발열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런 증상(症狀)을 아울러 ‘감기’라고 말한다. 감염된 세포를 건강한 세포가 파괴해 3~7일 정도 지나면 낫는 비교적 가벼운 질병이다.
감기에 걸리면 일반적으로 감기약(感氣藥)을 먹는다. 그러나 통상 감기약이라고 부르는 약들은 목에 생긴 통증이나 콧물을 줄여주는 등 감기 증상만 약화(弱化)시킬 뿐이다. 감기는 감기약이 아니라 우리 몸에 있는 세포의 힘으로 완치된다.
우리 몸에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몸에서 대항하는 항체(抗體)가 만들어져 다시는 감염되지 않는다. 그런데 감기게 한 번 걸렸다고 다시 걸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감기 바이러스는 200종류가 넘고 변이(變移)하기 때문이다. 처음 접촉하는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오면 또다시 감기(感氣)에 걸린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 (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60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이처럼 명나라 지원군이 오자, 전라 좌수영(본영, 여수)의 이순신(李舜臣)을 비롯하여, 전라 우수영(본영, 해남)의 이억기(李億祺)와 경상 좌수영(본영, 동래)의 박홍(朴泓), 경상 우수영(본영, 거제)의 원균(元均) 등이 명나라 지원군 맞기에 한창 바쁘다.
5월 25일(무인/6월 23일)
맑다. 명나라 관원과 선전관이 아직 숙취에 깨지 않아 통역 표헌(表憲)을 불러, 명나라 장수의 의도를 파악하려 했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고, 다만 ‘왜적을 쫓아 보내려고만 한다’고 했다. 또 ‘송시랑(宋應昌, 1536~1606)이 수군의 허실을 알고자 하여 자기가 데리고 온 탐정꾼(夜不收) 양보(揚甫)를 보냈는데, 수군이 이렇게도 장하니 기쁘기 한이 없다’고 했다.
늦게 명나라 관원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정오에 거제현(巨濟縣) 앞 유자도 바다 어귀로 진을 옮기고서 우수사(이억기)와 군사 작전을 논의하였다. 광양 현감(어영담)이 오고, 이어서 최천보(崔天寶)와 이홍명(李弘明)이 와서 바둑을 두고 물러갔다.
초저녁에 조붕(趙鵬)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다. 초저녁이 지나서 영남에서 오는 명나라 사람 2인과 경상우도(右道) 방백(方伯, 관찰사, 김륵)의 영리(營吏) 1인과 접반사(接伴使) 군관 1인이 진영의 문에 이르렀으나 밤이 깊어서 들이지 않았다.
5월 26일(기묘/ 6월 24일)
비가 내렸다. 아침에 명나라 사람들을 만나 보니 절강성(浙江省) 포수(砲手) 왕경득(王敬得)으로 문자는 좀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참 동안 이야기해 보아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답답하다.
순천 부사가 가장(家獐)을 마련해 두었다. 광양 현감도 왔다. 우수사 이억기(李億祺)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리포 첨사도 불렀으나 오지 않았다.
저녁 내내 비가 그치지 않았고 밤새 퍼붓더니 밤 10시쯤부터 바람까지 세게 불어, 배들이 조용히 있지 못했다. 처음에는 우수사의 배와 맞부딪치는 것을 겨우 구해 놓았는데, 또 발포 만호 황정록(黃庭祿)이 탄 배와 맞부딪쳐 거의 부서질 지경이었다.
송한련(宋漢連)이 탄 협선(挾船)은 발포(鉢浦) 배와 부딪쳐서 많이 부서졌다. 아침에 영남 우수사 원균(元均, 1540~1597)도 와서 만났다. 순변사 이빈(李濱)이 공문을 보냈는데, 허튼소리가 많으니 같잖아 우스웠다.
주) 가장(家獐)은 여름에 개고기를 삶아 먹던 풍습을 이르는 말.
5월 27일(경진/6월 25일)
배들이 비바람에 파손될까 염려되어 진영을 유자도(柚子島, 귤도)로 옮겼다. 협선 3척이 흔적도 없더니 저녁나절에 돌아왔다. 순천 부사와 광양 현감(어영담)이 와서 개고기 상을 차렸다. 영남 병사 최경회(崔慶會)의 답장이 왔는데, ‘수사 원균이 명나라 송응창(宋應昌)이 보낸 화전(火箭, 불화살)을 독차지하려고 계책을 꾸몄다’고 하니 우습다.
‘창원의 적들은 오늘 쳐서 평정하려 했으나 비가 오고 개지 않아 아직 나가 치지 못했다’는 전라 병사 선거이(宣居怡)의 편지도 왔다. 78)-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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