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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이 가고 해가 온다

시평

by 웅석봉1 2022. 10. 3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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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고/ ()가 온다// 밝았으면(),

 

문학 장르에서 운문(韻文)이 시(), 운문 아닌 것이 산문(散文)이다. 산문은 수필인데 그중에 이야기가 있으면 소설이 된다. 소설이 마라톤이라면 수필은 백 미터 달리기요 시는 높이뛰기와 같다고 하겠다.

 

문학은 어떤 주제를 표현하고자 하는 수단이니 짧을수록 경제적이다. 그런 면에서 시인이 가장 명석한 부류이고 소설가는 하등이다. 마찬가지로 소설을 읽는 사람보다 시를 읽는 사람이 합리적이다.

 

시 중에서도 짧은 시를 읽는 독자가 더욱 시간 절약형이다. 짧은 시는 해석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바로 가슴으로 와 닿기 때문이다.

 

웹진 <시인 광장>이 선정한 2011 올해의 좋은 시 100선을 보니 한두 줄의 짧은 시는 없다. 대부분이 한 면을 넘는 분량이고 그중에서 최우수로 선정된 시의 길이가 수필의 길이보다 길다.

 

일독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도 드물다. 시 문단의 현실이 이러하니 시가 시집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들이여 시를 살리려면 짧은 시를 쓰라.

 

저물어가는 12월에 새해를 생각하며 유명시인의 짧은 시를 소개한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이정록, <서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삶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한 늙은이의/ 더러운 욕망이/ 저토록 많은 꽃봉오리를/ 짓밟은 줄은 몰랐다.

-민영, <수유리 하나>

 

여보 야/ 이불 같이 덮자/ 춥다/ 만약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따뜻한 솜이불처럼/ 왔으면 좋겠다.

-이선관, <만일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왔으면 좋겠다>

 

놀라워라. 조개는 오직 조개껍질만을 남겼다.

-최승호, <전집>

 

꽃 그려 새 울려 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서정춘, <, 파르티잔>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은, <그 꽃>

 

무금선원에 앉아/ 내가 나를 바라보니/ 기는 벌레 한 마리가/ 몸을 폈다 오그렸다가/ 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한다.

-조오현, <내가 나를 바라보니>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

 

울지 말라 아픈 사람아// 겨울이 가장 오래 머무는 / 저 큰 산이 너 아니더냐

-이대홍, <큰 산>

 

하모니카/ 불고 싶다

-황순원, <빌딩>

 

산 뽕잎에 빗방울이 친다/ 멧비둘기가 난다/ 나무등걸에서 자벌레가 고개를 들었다 멧비둘기 켠을 본다.

-백석, <>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이음새/ 그래서 사람들은/ 그 이음새를/ 줄여서 새라 부르나 보다

-이가림, <>

 

밥을 먹다가 본다/ 앞 사람이 참 좋다. 그렇다// 밥을 먹다가, , .

-박의상, <발견>

 

늦가을 청량리/ 할머니 둘/ 버스를 기다리다 속삭인다// “곡 신설동에서 청량리 온 것만 하지?”

_유자효, <인생>

 

나는 저렇게 수많은 싱싱한 생명들이 한순간에 죽음의 낯빛으로 바뀌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시영, <에스컬레이터에서>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박정만, <종시>

 

장꾼들이// 점심때 좌판 옆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니/ 그 주변이 둥그렇고/ 따뜻합니다.

-안도현, <장날>

 

여러 새가 울었단다/ 여러 산을 넘었단다/ 저승까지 갔다가 돌아왔단다

-서정춘, <단풍놀이>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서정춘, <30년 전>

 

여기서부터, -멀리/ 칸칸마다 밤이 깊어/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이 걸린다.

-서정춘. <竹篇. 1 여행>

 

하늘이 조용한 절집을 굽어보시다가 댓돌 위의 고무신 한 켤레가 구름 아래 구름보다 희지고 있는 것을 머쓱하게 엿보시었다.

-서정춘, <경내 境內>

 

겨울이 왔네/ 외등도 없는 골목길을/ 찹쌀떡 장수가/ 길게 지나가네/ 눈이 내리네

-민영, <겨울밤>

 

문득/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성산포 앞바다는 잘 있는지/ 그때처럼/ 수평선 위로/ 당신하고/ 걷고 싶었어요.

-정호승, <문득>

 

산골에서는 집터를 치고/ 달궤를 닦고/ 보름달 아래서 노루 고기를 먹었다

-백석, <노루>

 

봉이 날아왔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네

-박찬, <鳳今>

 

()이 가고,

()가 온다. ()았으면.

-무명씨 <12>

 

열려라! 참깨야/ 뚝딱/ 38선이 터졌다

-무명씨, <도깨비방망이>

 

그림도 아닌 것이/ 벽도 아닌 것이// 살아있다

-무명씨, <프레임>

 

# 여기서 무명씨는 누구? 2011년 겨울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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