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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의 <좋은 풍경>

시평

by 웅석봉1 2022. 10. 2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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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의 시 <좋은 풍경>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최근에 광화문 교보문고 사옥에 내 걸린 글이다. 이 글은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교보문고에서는 여기 올릴 글을 선정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철철이 정한다고 한다.

 

정현종 시인을 평론가 이경철은 리얼니즘. 모더니즘. 순수서정 등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는 무당파이면서도 세 경향을 다 아우르고 빛살 같은 환한 언어의 깃털같이 가벼운 시를 쓰는 시인으로 대중으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라고 평한다.

 

시인은 문학을 전공하지 않고도 박두진 교수의 추천으로 등단하였고 외국의 많은 시를 번역하였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그는 삶과 작품을 엄격히 구분하는 완벽주의자여서 인터뷰하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그러한 그가 높은 대중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또한 의외다.

 

시인의 시는 직관과 상상력으로 외계의 사물과 시인 내면의 언어를 조화롭게 합일시켜 사물을 무겁지 않고 가볍게 받아들인다. 열권이나 되는 그의 많은 시 중에서 시집<<한 꽃송이>>에 있는 <좋은 풍경>을 골랐다. 시인의 시풍을 잘 나타낸 시라는 생각에서다.

 

 

좋은 풍경

 

 

정현종

 

늦겨울 눈 오는 날

날은 푸근하고 눈은 부드러워

새살인 듯 덮인 숲속으로

남녀 발자국 한 쌍이 올라가더니

골짜기에 온통 입김을 풀어놓으며

밤나무에 기대서 그 짓을 하는 바람에

예년보다 빨리 온 올봄 그 밤나무는

여러 날 피울 꽃을 얼떨결에

한나절에 다 피워놓고 서 있었습니다.

 

<좋은 풍경> 전문.

 

평소 나의 좋은 풍경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며 눈을 감아 보았다. 그랬더니 어느 봄날인데 경복궁 돌담길 그늘 사이로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두리번거리면서 걷고 있는 모습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랬는데,

 

정현종 시인의 좋은 풍경은 내 예상과는 너무 다르다. 봄이 아니라 늦은 겨울, 그것도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숲속에서의 정사 장면이라니, 하하하 웃어야 할지 성스러운 생명의 탄생에 옷깃을 여미어야 할지 어리둥절하다.

 

어이하여 눈 오는 숲에서 그런 열정적 사랑과 생명이 돋아나는지, 음미하면, 시인의 상상력이 엉뚱하면서도 경이롭다. 정현종 시인이 아니고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좋은 풍경이리라. 그래서 시인은 자유인이고 시는 막힌 숨구멍을 틔운다고 하는가!

 

아무도 없는 깊은 산골 하얀 눈 위에서 앞서간 사람의 도장처럼 찍힌 발자국을 만난 시인은 가슴이 뛴다. 두 개는 좀 커서 남자고 두 개는 좀 작아서 여자일 테니, 시인은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봄 직하다.

 

그때 저 멀리서 일단의 회오리바람이 천지를 덮치니 나뭇가지에 앉았던 흰 눈들이 가루가 되어 온 산을 희뿌연 안개로 감싼다. 안개는 사람의 입김이 되어 골짜기에 가득 찬다.

 

여기서부터 환상이 찾아든다. 사람의 입김이 모인 곳을 살피니 남녀 한 쌍이 나무에 기대어 비스듬히 서 있다. 연인들의 몸에서 사랑의 열기가 피어오른다. 그 열기가 어찌나 뜨거웠던지 나무가 여름이 온양 땀을 흘리며 꽃을 피운다. 아닌가?

 

아니라면 그들의 냄새에 취해 화들짝 놀랬는가, 그래서 꽃도 얼떨결에 다 피워버렸는가. 그 많은 나무 중에 왜 하필 밤나무일까. 6월 중 순 경 밤나무 숲에 가보라. 푸른 잎 사이로 다 큰 누에 같은 희멀건 밤꽃이 흐늘거리고 있을 것이다.

 

물오른 남성의 형상이다. 좀 더 다가가서 꽃내음을 맡아보라. 뇌를 마비시킬만한 색향(色香)이다. 만약 당신이 여자라면 그 밤에 잠 못 이룰 것이다. 오죽하면 과부야, 밤꽃이 익을 때 밤나무 숲에 가지 말라고 했을까. 지금이 딱 그 시기다. ㅎㅎㅎ

 

시는 도덕이니 관습이니 하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이를 초월한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퇴폐적인 냄새도 맡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슴속에 한 번쯤 이런 일도 그려봄 직한 풍경인 것을 어쩌라. 시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순화시키는 것이 소임이 아닌가.

 

<좋은 풍경>은 상징과 상상이 찰떡궁합으로 연결되어 재미와 웃음이 가득한 시 이리라. 두 사람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두 발자국이 올라가고 나무에 기대서 키스를 하는 게 아니라 그 짓을 한다니 무엇이 앞에 있어 어지러운 게 아니라 뒤통수가 간질거려서 견 될 수 없다. 훗훗훗

 

정현종 시인은 왜 이런 풍경을 좋은 풍경이라 했을까. 얄궂은 풍경을 놓고 좋은 풍경 운운하니 역설을 말하려나? 아닐 것이다. 시인은 도덕이니 법이니 관습이니 하는 얽매인 세상이 싫었고 나아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생명을 자유스럽게 넘나들고 싶었던 것이리라.

 

지금쯤 고향 뒷산 밤나무 숲 위에는 밤꽃이 눈처럼 피였을 테고 그 사이로 소 꼴 베는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는 산울림이 되어 동네로 내려오겠지. 늦겨울 눈 오는 날에 본 좋은 풍경이 초여름 고향 산골의 밤꽃이 되어 그 시절이 그리워짐은 어찌 된 일일까. ~아 그리운 산천이여. 나 여기 있노라. .

 

202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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