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의 <코스모스>
김사인 시인은 그의 두 번째 시집<<가만히 좋아하는>>을 2006년에 출간하였다. 첫 시집<<밤에 쓰는 편지>>을 낸 지 무려 19년 만이다. 그만큼 그는 과작(寡作)하는 시인이다.
그는 시대적으로 한창 문학이 어려웠던 1982년도에 동인지 <시와 경제>의 창간 회원으로 참여하여 시를 쓰기 시작했다. 어눌한 말투에 누구나 다가서도 거부감 없는 부드러움으로 시인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으로 평이 나 있다.
시인의 시는 ‘화려하거나 크고 엄청난 것에 있지 않다. 삶의 큰길에서 조금은 비켜나 있고 조금은 뒤져 있는 것들을 삶의 중심에 갖다 다시 세우는 것’이 말하자면 그의 시다. 신경림 시인이 그를 평하는 말이다.
평론가 임우기는 ‘느릿느릿 초원을 건너는 낙타나 당나귀같이 순하고 파리한 얼굴을 한 형의 모습이 기억에 스칩니다’라고 하면서 그의 시를 대하면 마치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것들을 사랑한 백석 시인이 떠 오른다’고 이 시집 해설에서 말하고 있다.
시인의 <<가만히 좋아하는>> 시집에 실려 있는 67편 중에서 가장 짧으면서 많은 해석과 긴 여운을 주는 <코스모스>라는 시를 감상해 보자.
코스모스
김사인
누구도 핍박해본 적 없는 사람의
빈 호주머니여
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
그간의 일들을
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
<코스모스> 전문.
이 시를 고른 사유는 두 가지다. 우선 간결한 문장과 쉬운 언어로 씌어 졌다는 점이다. 제목부터 친근하고 시어들이 하나도 어려운 말이 없다. 그러면서도 아련한 감흥이 절로 들어오지 않는가. 이처럼, 좋은 시란 읽으면 바로 느껴지는 맛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다음으로 그 내용이 우리 일반 서민들의 삶을 솔직하게 말하고 있어 화자가 남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누구나 춤추는 코스모스를 곁에 끼고 시골길을 걸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길을 걸으면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향수를 느끼고 저무는 인생무상을 느낄 것이다.
코스모스는 들판의 꽃이요 갈대의 꽃이다. 바람이 고요하면 하늘거리고 거세면 쓰려질 듯이 요동친다. 코스모스 한 송이는 빈약하고 여리지만, 무리 지어 피면 웅장하고 화려하다. 그래서 코스모스는 민중이 꽃이겠다.
코스모스는 살이 찌거나 튼튼하지도 않다. 가늘고 연약하다. 그래서 그 누구를 괴롭히거나 해코지할 수가 없다. 항상 외진 곳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피고 지는 꽃이다. 바로 돈도 없고 빽도 없는 가난한 서민의 꽃이다. 호주머니가 넉넉하여 한 번이라고 먹고 싶은 것 먹어 본 일이 있는 꽃이더냐. 항상 빈 호주머니인 추운 인생이다.
그런 가난한 인생이라 해서 어찌 고향이 없을 소며 어찌, 할 말이 없겠는가. 오히려 잘 사는 사람들보다 더 ‘그간의 일들’이 가슴을 찢고 있으리. 그런 아픈 상처를 언제 마음 터놓고 ‘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 이 삭막한 세상을 떠나 언제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리.
시인은 말한다. 코스모스 같은 인생 이제 거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고향 가서 그간의 고통을 털어 내고 싶다. 남들은 나더러 교수(동덕여대)하고 있으니 잘 산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 마음은 그게 아니다.
아직도 마음은 감옥 안이다. 그 시절 얼마나 감옥을 들락거렸는가. 그때 신세 진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시인은 말한다. ‘입은 은혜 산같이 무겁고 끼친 폐는 처처에 즐비하다. 감사니 미안이니 하는 말들은 헛된 수사일 뿐이다’라고,
시인이 왜 어머니가 아니고 아버지께 울며 여쭙고 싶었을까? 사나이라면 알만하지 않겠는가. 자고로 어머니는 인정이 많고 자상하다. 그러니 어찌 어머니 앞에서 차마 그런 일들을 다 여쭐 수 있겠는가. 그러니 대범한 아버지일 수밖에.
시인이 왜 글을 아껴 쓰며, 왜 말이 어눌할까. 천성일까?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유가 더 있다고 본다. 시인은 코스모스처럼 들판에서 이런저런 자연도 구경하면서 느리게 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 빨리 돌아가고 있다. 이래서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게 아니다. 좀 더 천천히 느리게 살자. 시인의 다른 시를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강한 동행 충동을 느낀다. 나도 살면서 누구에게 핍박해본 일 없는 빈 호주머니였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그간의 일들’이 많다. 나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서 울며 고할 아버지는 안 계시지만 고향의 사람들이 있고 산과 들과 강이 있다. 그리고 추억이 있지 않은가. 돌아가서 그들에게 모두 다 툭 털어놓고 진짜 자유인이 되고 싶다.
시가 우리에게 무엇을 묻는가? 아니 시인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핍박받고 상처 난 삶이 억울하니 보상을 해 달라고 하는가. 아니면 억울함의 하소연인가. 아니다. 인간의 자연 회귀 본능을 말한 것이리라. 사족을 달 필요가 없다. 나도 더 늙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가자. 그리하여 무거운 등짐을 고향의 산천에 묻고 세상을 놓아 버리자. 짧은 시 한 편이 내 마음을 이리도 흔든다. 끝.
이면우의 <버스 잠깐 신호등에 걸리다> (1) | 2022.11.20 |
---|---|
박영대의 <이부자리> (1) | 2022.11.07 |
월이 가고 해가 온다 (2) | 2022.10.30 |
정호승의 <그리운 부석사> (1) | 2022.10.29 |
정현종의 <좋은 풍경> (1) | 2022.10.25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