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난중일기> 38

서평

by 웅석봉1 2024. 5. 26. 12:22

본문

이후 진린이 이순신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이순신을 작은 나라의 장수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대등한 전장의 동료이자 전우로서 인정하였다. 진린이 이순신과 함께 행차할 때, 자신의 가마가 이순신의 가마를 앞서 나가지 못하게 했다.

 

더 나아가 진린은 이순신을 이야노야로 불렀다. 중국에서 자는 어르신이라는 의미로 완전한 존칭이었다. 이순신보다 2살이 많았던 진린은 이처럼 이순신을 깍듯이 예우했다.

 

진린이 이순신을 얼마나 높게 평가하였는지는 선조에게 이순신을 칭찬하는 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진린이 선조께 올린 글이다.

 

-통제사는 천하를 다스릴 만한 인재요, 하늘의 어려움을 능히 극복해 낼 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임금 선조는 진린의 글을 받고 흐뭇해하며 자신의 장수를 치하할 만한 그릇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순신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만이 더해졌다. 그러니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 한심하고 통탄스럽도다. 흑흑흑

 

한편 당시 일본의 정세는 어떤가? 일본인들은 전국시대 3대 영웅으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꼽았다. 그런데 그들의 인생관은 각기 달랐다.

 

가령, 울지 않는 두견새를 두고,…… 오다울지 않으면 죽여버린다.’ ‘도요토미울지 않으면 어떻게든 울게 만든다.’ ‘도쿠가와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니 개성이 다 다르다. 결국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침착과 끈기의 사나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최종 승리자가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가신 중에 믿을 만한 다이묘들을 조선에 원정 보냈다. 그들에게 전쟁 경험을 쌓게 하는 동시에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정복한 조선 땅을 영지로 나누어주어 가신들의 힘을 키우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조선의 전쟁은 질질 끌었고 자신의 측근 다이묘들은 조선에서 엄청난 병력 손실만 입었으니,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울화통이 터졌다. 그래서인지 그는 병이 난 것이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옴을 느낀 그는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1593~1615)가 아직 어리니 그는 아들을 이시다 미쓰나리(1560~1600)와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에게 부탁하고, 1598818일에 숨을 거두면서 절명 시 하나를 남겼다.

 

몸이여, 이슬로 왔다가 이슬로 가나니, 나니와(오사카)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로다

 

이 자()의 미친 야욕 때문에 조선인은 무참히 죽어갔다. 조선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줄어들 정도로 죄없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 비극도 비극이지만 살아남은 그 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은 오죽했을 것인가. ~슬프다. 흑흑흑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그의 임종을 지켰던 이시디 미쓰나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당시 조선에 원정 나가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와 시마즈 요시히로 가토 기요마사 등에게 그의 죽음을 감추었다. 그러면서 그의 글씨로 명령서를 위조하여 조선에서의 철병 명령을 내렸다.

 

전쟁의 막바지, 명량에서 패하고 직산(稷山, 충남 천안)에서 명군에 막혀 다시 남해안으로 후퇴했던 일본군들은 왜성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처량한 신세였는데, 이런 철병 소식은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38)-계속-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중일기> 40  (1) 2024.05.30
<난중일기> 39  (3) 2024.05.28
<난중일기> 37  (1) 2024.05.24
<난중일기> 36  (1) 2024.05.22
<난중일기> 35  (1) 2024.05.20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