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난중일기> 14

서평

by 웅석봉1 2024. 4. 22. 14:21

본문

*한산도야음(閑山島夜吟)

 

수국추광모(水國秋光暮)/ 경한안진고(驚寒雁陳高)/ 우심전전야(憂心輾轉夜)/ 잔월조궁도(殘月照弓刀)

 

한산도의 밤

 

물나라 가을빛이 어느 듯 저물에라/ 높이 뜬 기러기 떼 추위에 놀랐고나/ 근심에 잠 못 이뤄 이리저리 뒤척일 때/ 지새는 저 달빛이 활과 칼을 비취어라.

 

, 이순신은 함경도에서 초급장교 생활을 함께했던 선거이(宣居怡, 1550~1598)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남해로 내려와 왜군과 싸웠다. 어느 날 그가 황해도 병마절도사로 발령이 나니, 이순신은 석별의 정을 다음과 같이 애절한 시로 그를 배웅했다.

 

*증별선수사거이(贈別宣水使居怡)

 

북거동근고(北去同勤苦)/ 남래공사생(南來共死生)/ 일배금야월(一杯今夜月)/ 명일별리정(明日別離情)

 

선수사(충청 수사 선거이)를 보내며

 

북에서 서로 만나 고생을 함께 하고/ 남으로 내려와서 생사를 같이했네/ 오늘 밤 달빛 아래 술 한 잔 잡읍시다/ 밝은 날 떠나간 후 그리움 어이하리.

 

*검명(劍銘)

 

서해어룡동(誓海魚龍動)/ 맹산초목지(盟山草木知)

 

칼에 새긴 글

 

바다 향해 다짐 두니 어룡이 꿈틀/ 산 두고 맹세하니 초목도 아는 듯

 

위 세 편의 시조를 번역한 사람은 북한의 국문학자 홍기문(1903~1992, 충북 괴산에서 출생)으로, 그는 소설 임꺽정을 쓴 홍명희(1888~1968, 호는 벽초)가 아버지이고, 소설 황진이를 쓴 홍석중(1941~현재)이 그의 아들이다. 황진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높이 인정받아 2004년 만해문학상(1973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제정)을 수상하였다.

 

말과 글은 그 민족의 혼이 깃든 문화의 총체다. 그래서 한문을 국역할 때 가장 아름답고 쉽고 친근한 우리말로 풀어 쓰는 것이 중요하다. 홍기문이 국역한 이순신의 시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사상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봉수 이순신 전략연구소장의 글을 인용함.

 

각설하고, 전라도 관찰사 이광(李洸)으로부터 일본의 함대가 증파되어 부산으로 모여든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선조는 이순신에게 출정 명령을 내렸다. 이순신은 전라 우수사 이억기를 여수로 불렀고, 이억기의 부대는 74일 합류하였다.

 

다음 날부터 이순신과 이억기는 종일 작전 회의를 하였다. 그리고 76일 이순신과 이억기는 세 번째 출정에 나섰다. 그리고 가까운 노량에서 원균의 경상우수영을 합세시켰는데, 이때 경상우수영의 판옥선은 7척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래서 대략 60척의 연합 함대를 만들어 출항하였다.

 

연합 함대가 창신도에서 76일 밤을 지내고 날이 밝자 이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승전의 기억이 생생한 당포 (지금의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에서 7일 저녁을 보내는데, 그날 밤 근처에 사는 목동(牧童) 김천손(金千孫, 軍馬 담당 관리 밑에서 일하던 사람)이 조선 수군이 있는 곳으로 급히 달려와서 일본 수군의 동향을 전해주었다.

 

대성, 중선, 소선 등을 합쳐 70여 척의 적선이 오후 2시쯤 거제도 영등포에 나타나 거제와 고성의 경계인 견내량에 머물고 있습니다.”

 

78일 오전, 이순신의 연합 함대가 <소장군도>를 돌아 견내량(거제 사등) 쪽으로 접근하니 아니나 다를까 적군 함대 70여 척이 견내량 건너편에 있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함대 70여 척이 앞서 있고, 구키 요시타카와 참모장 가토 요시아키의 부대는 뒤쪽에 70여 척의 함대로 진을 치고 있었다. 14)-계속-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중일기> 16  (1) 2024.04.25
<난중일기> 15  (1) 2024.04.23
<난중일기> 13  (1) 2024.04.21
<난중일기> 12  (1) 2024.04.17
<난중일기> 11  (1) 2024.04.14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