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무엇이 사랑인가? 당신과 내가 2년 동안 남몰래 벌인 전쟁이 사랑인가? 아버지가 어머니를 한없이 기다린 게 사랑인가? 나를 낳아준 그 여자와 그 여자의 남자가 멀리 도망간 게 사랑인가?
당신의 아버지가 그 여자와 열흘 동안 한집에서 살고 지고한 게 사랑인가? 이혼을 세 차례나 하고 결혼은 네 번 한 어느 노신사가 아직도 자기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렇다면 사랑은 도대체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사랑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다. 사랑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누군가가 말했었지. 그래, 그것이 사랑일까?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분명코 그것이 아니었어. 아버지는 사랑의 시작은 <용서>라는 말을 실천한 사람이었어.
아버지의 사랑은 기다림· 믿음, 그리고 배려 이런 것이었어. 나는 지금도 아버지의 그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래. 나의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
하지만 나의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과는 달라. 내가 당신의 고향 집을 찾아간 것은 아버지의 산소를 뒤로 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어. 내가 발길을 그쪽으로 돌린 것은 아주 사소한 나의 기억 때문이었지.
그때 갑자기 당신의 아버님을 뵙고 싶은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어. 언젠가 당신이 말했지. 고향에 부모님이 계신다고. 특히 아버님이 젊은 시절 바람기 같은 게 있었다고. 바람기 같은……, 그것이었어.
나는 아버님의 바람기. 아니, 사랑. 그것을 보고 싶었던 거야. 결국은 당신의 돌변한 태도에 나는 아버님의 바람기는 보지 못했지만 말이야. 그날 다방에서 당신의 그 안타까워하는 표정과 더듬거리는 말투 그리고 내내 한숨을 몰아쉬는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한동안 정신을 잃었지.
당신의 집 마당에서 본, 당신 눈의 의미를 당신이 나에게 확인시켜 주는 순간이었지만 당신은 나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어. 그때 나는 당신을 마구 윽박질렀을 거야. 사랑은 신념이고 약속이며 행동이라고 고래고래 외쳤을 거야.
그때 나는 당신의 태도가 원망에 가까운 실망을 받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어찌할 수가 없었어.
나는 당신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그날 공항으로 시간 맞추어 나오라는 마지막 엄포를 놓고 발길을 돌려야 했어. 언젠가 나의 아버지가 도시 어디에서 나의 어머니를 만났을 때처럼……, 이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전날 나에게 유언처럼 말씀하셨어. 그때가 행복했었노라고.
지금 당신도 당신의 태도에 대하여 무척 안타까워하고 있겠지? ‘당신은 내 마음을 모를 거야. 내가 당신에게 내 마음을 이해하도록 말하지 못했으니까’
아마도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그래. 내가 당신의 마음을 다 모를는지도 모르지. 당신은 아니라고 했지만, 우리의 관계를 한바탕 흐드러진 봄날의 축제로 여기고 있을는지도 모르지.
또, 당신 아버지의 여자가 열흘 동안 당신의 집에서 살았던 그 사연에 대하여 내가 다 이해 못 했을는지도 모르지. 그러고는 다리를 절면서 새끼줄 넘기를 포기하지 않던 점촌 할머니도, 스포츠 센터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에어로빅 수강을 받던 중년 부인에 대하여도 내가 이해 못 하였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당신에게 붙어있는 나의 악마를 떼어내지 않고는 당신이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게 되었어. 계속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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