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학교에 다니세요?”
“응, 오른쪽이야”
“아~고등학교……, 전 중학생이고 2학년. 오늘은 우리 할머니 칠순 잔치가 있어서 모두 들 거기 가셨어요”
“응, 그렇군”
나는 무언가 더 말을 하려다가 아이의 거처를 확인한 것으로 만족하고, 할머님이 떠올라 아이의 눈에서 벗어났다. 그날은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헤어졌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일기장을 모두 불태우면서, 소영이와 만난 그날의 일기를 읽고 결혼을 취소할까 하고 고민하던 생각이 난다.
담배를 한 개비 더 물고 느티나무를 떠나왔다. 소영이네의 약국으로 발길을 옮겼다. 약국은 없다. 대신 그 자리엔 5층 빌딩이 버티고 서 있다.
아~ 옛날이 또 생각난다. 그날 이후로 나는 소영이가 보고 싶으면 가끔 약국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그녀를 다시는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소영이를 만난 것은 정말 뜻밖의 자리에서다. 2학년 겨울방학 때 우리 학교가 주관하는 시 낭송회 때였다.
우리 학교 시 낭송회 <동주(同舟)>는 역사가 오래되었다. 해방 이듬해부터다. J시의 중. 고등학교 사회에서는 알아주는 서클(Circle)이다. <동주>는 한배를 타고 가자는 시 모임이다. 가끔은 시도 짓고 낭송도 하였다. 내가 총무였다. 우리는 시내 중. 고등학교에 안내장을 보냈었다. 장소는 우리 학교 소강당에서였다.
소영이도 시를 좋아하였다. 그날 내가 낭송한 시는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이었다. 당시 이 시를 멋모르고 좋아하였다. 나와 처지가 다르지 않다고 느꼈던 것 같았다. 나도 또 다른 고향이 있었다.
한반도의 한복판 충청도에서 태어나 경상도(부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 고등학교는 전라도에서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도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을 큰 소리로 읽어 보자. 유고 시집『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흑룡강 조선 민족 출판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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