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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36)

단편소설

by 웅석봉1 2023. 4. 17.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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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도 없는 이곳에 계속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 할머님의 생각이셨다. 나는 소영이가 맘에 걸리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대학은 서울에서 다니고 싶었다. 서울로 가서 나는 대학 기숙사로 들어가고 할머님은 고모님 댁으로 가셔서 식당 일을 돕기로 하였다. 그것이 최선책이라 생각했다.

 

고모님이 처음부터 제시하던 방안이었다. 그동안 학비와 생활비는 할머님이 고향 집과 과수원을 처분해서 저축해둔 돈으로 해결하였지만 이제 그 돈도 거의 바닥이 난 상태였다. 할머님이 고모님 댁에서 일하시면 학비는 고모님이 지원하기로 하였다. 고모님과 할머님이 약조한 사항이라는 것을 나는 한참 후에 알았다.

 

우리가 서울 생활을 시작한 이후 소영이와 나는 전화와 편지로 사랑을 이어갔다. 그때 나는 한 달에 두 번씩 엄마를 찾아갔다. 내 마음은 이미 엄마한테서 소영이에게로 넘어간 후였다. 자연히 건성으로 엄마를 대했다. 어느 날은 엄마가 거추장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땐 내가 나쁜 놈이란 생각도 하였다. 지금 생각하니 대학 1학년을 온통 소영이 하나로 보낸 것 같다. 1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다. 전방에 배치되었다. 군대 생활도 온통 소영이와 사랑의 속삭임으로 이어졌다. 소영이도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의 내가 진학한 학교에 합격하였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녀의 집념이 이룬 결과다. 이제 나와 소영이는 한 학교 학생이 된 것이다. 소영이가 대학에 입학하던 그해 3월에 그녀는 내가 복무하는 부대로 면회를 왔다. 가슴이 설레어 그 전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1년여 만에 만난 소영이는 여인이었다. 가슴은 볼록하고 허리는 더욱 잘록해졌다. 장소가 부대 면회소가 아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시절 우리가 만나는 하루는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처럼 너무 짧았다. 그러나 기다리는 한 달은 1년처럼 길고 멀었다.

 

내가 군 생활을 하는 동안은 엄마의 얼굴을 몇 번밖에 보지 못했다. 정말 엄마에게는 미안하였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소영이와는 다달이 만났다. 내가 마지막 휴가를 얻어 서울에 오던 날 그때는 늦은 여름이었다. 소영이와 나는 남산을 올랐고 명동을 걸었다.

 

낮에 남산의 숲속 의자에 앉아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밤이 되어, 우리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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