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 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노숙> 전문. 김사인 1956년 충북 보은 출생. 1981년 <시와 경제>로 등단.
우리는 더러 타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생을 되돌아볼 때가 있다. 지금 살아내고 있는 삶이 과연 바르고 온당한가. 하는 의문이 문득 일상 속으로 얼굴을 내밀어 올 때가 있는 것이다.
까닭 없이 시간을 낭비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때도 있을 것이다. 몸만이 유일한 재산이므로 천금처럼 그를 아껴야 하나 생활은 그것을 허여하지 않는다. 그러니 몸의 노고가 얼마나 심하겠는가. 오후의 생을 걸어가는 이들이여, 찬물 한잔 뜨겁게 마시자.
(시인 이재무의 해설)
*시인도 언젠가 노숙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노숙에서 중요한 것은 몸이다. 허구한 날 풍찬노숙(風餐露宿)으로 살아가니 몸이 건강해야 온전한 노숙자로 살아갈 수 있겠다. 정신은 한참 후의 일이고, 그래서 마지막 연에서 정신이 몸에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시는 언어로 담근 술이라고 김사인은 말한다. 무슨 의미일까?
노숙자와 대학교수는 닮은 점이 많다고 한다. 우선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고, 되기는 어렵지만 되고 나면 쉽고, 작년에 한 말 금 년에 또 해도 된다니 우스개도 그런 우스개가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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