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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삿갓> 206

서평

by 웅석봉1 2026. 3. 1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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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몬 카사스(1866~1932), 스페인 화가.

 

소설 김삿갓206

 

<사람이란 누구나 약자(弱者)를 동정(同情)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공개(公開) 재판석상(裁判席上)에서 일반 방청객(傍聽客)들이 납득(納得)할 만한 증거(證據)를 보여 주지 않고 여인을 덮어 놓고 중죄(重罪)로 낙인(烙印)을 찍어 버리면, 방청객(傍聽客)들은 오히려 죄인(罪人)을 동정(同情)할 뿐만 아니라, 사또의 횡포(橫暴)를 나무라기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체(屍體)를 검사(檢査)하기 이전(以前)에 반드시 다음과 같은 절차(節次)를 밟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김삿갓은 사또에게 이러이러한 절차(節次)를 밟은 뒤에, 방청객(傍聽客)들의 동의(同議)를 얻어서 최후(最後)의 심판(審判)을 내리도록 하라고 자상(仔詳)하게 일러주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재판(裁判)은 선생께서 일러주신 대로 모든 절차(節次)를 밟아서 공개적(公開的)으로 시행(施行)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사또는 문제(問題)의 여인을 동헌 마당에 끌어다가 꿇어앉혀 놓았다. 공개(公開) 재판을 한다는 방()을 미리 써 붙였기 때문에 동헌(東軒) 마당에는 구경꾼들이 수없이 많이 모여들었다.

 

방청객(傍聽客) 중에는 김삿갓도 한몫 끼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여죄수(女罪囚)의 옆에는 난데없는 돼지() 두 마리가 죄수(罪囚)처럼 결박(結縛)을 진 채 꿀꿀거리고 있었다.

 

방청객(傍聽客)들은 난데없는 돼지를 보고 제각기 한마디씩 쑥덕거린다.

<저 돼지는 어떻게 된 돼지야, 돼지도 서방(書房)을 죽이고 재판(裁判)을 받으러 끌려온 모양인가?>

 

<설마 돼지가 죄수(罪囚)로서 끌려왔을라구?>

<그러면 저 돼지()는 왜 끌려온 거야?>

 

돼지가 무엇 때문에 끌려왔는지, 그 이유(理由)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재판(裁判)하는 자리에 돼지를 등장(登場)하게 한 것은 김삿갓의 지시(指示)였다.

 

사또는 동헌(東軒) 마루 위에서 죄수(罪囚)를 굽어보며 문초(問招)를 시작한다.

<죄수(罪囚)는 들어라, 너는 본서방(本書房)을 살해(殺害)하여 불에 태운 것이 분명(分明)한데, 아직도 네 죄를 자백(自白)하지 않겠느냐?>

 

죄수는 사또를 올려다보며 분노(忿怒)에 넘친 어조(語調)로 항변(抗辯)한다.

<사또께서는 어찌하여 아무 죄()도 없는 쇤네를 살인범(殺人犯)으로 몰아붙이시옵니까? 아내가 남편(男便)을 죽일 수 있는지 없는지, 사또께서는 댁()에 돌아가셔서 마나님에게 물어보시면 잘 아실 것이 옵니다.>

 

죄수(罪囚)는 자신의 무죄(無罪)를 변호(辯護)하기 위해, 사또의 마누라까지 물고 늘어질 정도(程度)로 악랄(惡辣)하였다. 그러나 방청객(傍聽客)들은 그 말을 듣고 나더니, 모두 들 그 여인(女人)을 동정(同情)하여 마지않는다.

 

<저 여자는 살인범(殺人犯)으로 몰리는 것이 얼마나 억울(抑鬱)하면 사또의 마누라까지 물고 늘어질까, 증거(證據)도 없는 저 여자를 본부(本夫) 살해범(殺害犯)으로 몰아치는 것은 사또가 잘못하는 일 같은걸,>

 

<누가 아니래! 내가 보기에도 사또가 너무 심()한 것 같아, 정말로 남편(男便)을 죽인 여자(女子)라면 저토록 당당(堂堂)하게 나올 수가 없지 않을까?>

사또는 방청객(傍聽客)의 분위기(雰圍氣)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문초(問招)를 계속한다.

 

<네가 아무리 무죄(無罪)를 주장해도 본부(本夫)를 살해(殺害)한 죄인(罪人)임에는 틀림이 없다, 네 죄()를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는데, 네가 어찌 죄를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냐?>

 

<사또는 어디다 근거를 두고 쇤네를 살인범(殺人犯)으로 몰아치는 것이 옵니까, ()가 있다면 증거(證據)를 보여 주시옵소서, 아무리 사또이기로 생사람을 살인범(殺人犯)으로 몰아치는 법()이 어디 있사옵니까?>

 

여인(女人)은 길길이 날뛰며 정면(正面)으로 대드는 것이 아닌가. 사또는 이때다 싶어 여인(女人)을 굽어보며 다시 말한다.

<네가 말 한번 잘하였다, 만약 남편(男便)을 죽여 불에 태워 버린 증거(證據)를 보여 주기만 하면, 네 죄()를 승복(承服)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그야 물론 입지요, 쇤네가 남편(男便)을 죽여 불에 태워 버린 증거(證據)가 있다면 어찌 승복(承服), 아니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사실(事實)이 없는데 그런 증거가 어떻게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여인(女人)은 최후(最後)까지 당당(堂堂)하게 버티고 나왔다. 그러니까 방청객(傍聽客)들은 여인을 점점 동정(同情)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로 보아도 범인(犯人)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또만은 여인(女人)의 죄를 확신(確信)하고 다시 이렇게 말했다.

 

<너는 증거(證據)가 없는 줄 알고 어디까지나 큰소리를 치고 있구나, 그러나 노자(老子)께서는 하늘의 그물은 무척 성긴 것 같아도 죄인을 빠져나가게 내버려두는 일은 없다, 천망회회소이불루(天網恢恢疎而不漏)’라고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아무리 간지(奸智)가 능하기로 죄()를 면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奸智(간사한 지혜)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2), 192~194-계속-(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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