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김삿갓》 164
<향수(鄕首) 어른의 병세(病勢)가 심상치 않다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무봉(無縫)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김삿갓을 마주 보며,
<선생한테~니까 말씀인데, 향수 어른은 앞날이 얼마 남은 것 같지 않아요>
<별안간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병세가 갑자기 악화(惡化)되었다는 말씀입니까?>
<갑자기 악화(惡化)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먹어야만 사는 법인데, 그 어른은 하루에 미음 한 공기로 간신히 연명(延命)을 해오시는 중이거든요, 그래, 가지고 서야 어떻게 오래 살 수 있겠소이까?>
<일 전에 읍내에서 지어 온 보약(補藥)은 자셨는가요?>
<보약도 소화(消化)시킬 만한 기운(氣運)이 있어야 자실 게 아니오>
무봉(無縫)은 거기까지 말하고 또다시 침통한 침묵(沈默)에 잠겨 있다가,
<그 애를 향수 어른께 주어 버린 것은 나의, 일생일대(一生一大)의 잘못이었어>
하고 자탄(自嘆)하듯 중얼거리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무봉(無縫)의 애타 하는 심정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는 김 향수(鄕首)의 돈과 세도(勢道)를 이용해 먹으려고 누이동생을 소실로 들여보내는 데는 성공을 한 셈이었다.
그러나 김 향수가 너무나 늙어서 남편 구실조차 제대로 못 해오는 데다가, 덜컥 죽어 버리기까지 하면 봉녀(奉女)는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고 말 것이 아니겠는가.
무봉(無縫)은 지금 그런 경우를 생각하고 혼자 한숨을 쉬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자작지얼(自作之孼)이니,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할 것이랴!
김삿갓은 그런 일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이렇게 말했다.
<향수(鄕首) 어른이 오늘 내일로 돌아가실 것도 아닌데, 왜 지나친 걱정을 하시오>
무봉은 술을 마셔 가면서,
<물론 나도 향수(鄕首) 어른이 오늘 내일로 돌아가시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가 매우 의심(疑心)스러워요>
<인명은 재천(在天)이라고 했으니, 앞날의 일을 누가 알 수 있겠소이까>
<그야 물론 그렇기는 하지요, 당장 죽을 것 같으면서도 4, 5년씩 길게 끄는 목숨도 없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어차피 죽을 사람이 목숨만 오래 끌면 무얼하오, 그럴 수록에 누이동생의 신세만 비참(悲慘)해질 뿐이지요>
김삿갓은 그와같이 우울한 화제(話題)에서는 한시바삐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우울한 얘기는 집어치우고 술이나 유쾌(愉快)하게 마십시다. 이 좋은 술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하다 보니 술맛이 떨어집니다.>
<알겠소이다, 그런 얘기는 집어치우고 술이나 마십시다>
술잔이 오고 가는 동안에 두 사람은 어지간히 취했다. 그러나 무봉(無縫)은 아무리 취해도 누이동생의 일만은 잊어버릴 수가 없는지, 또다시 그 얘기를 들고나온다.
<어머니, 아버지가 돌림병으로 한꺼번에 돌아가신 것은 그 애가 여섯 살 때의 일이었지요, 그때부터는 그 애를 내가 맡아 길러 왔으니까, 그 애는 말이 누이동생일 뿐이지, 나에게는 딸이나 진배(眞拜)없는 아이예요.>
<매씨(妹氏) 얘기는 안 하기로 해놓고, 그 얘기를 또 끄집어내면 어떡합니까?>
<그 애의 장래가 너무도 암담(暗澹)해 보여서 그래요, 본인은 싫다는 것을 내가 우겨서 향수 어른의 부실(副室)로 들여보냈거든요>
<아무리 그렇기로, 기정사실(旣定事實)을 이제 와서 뉘우친들 무슨 소용입니까?>
<그야 그렇기는 하지만,……,>
그리고 무봉은 한동안 침통(沈痛)하게 앉아 있다가, 문득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애가 머지않아 과부(寡婦)가 될 것만은 의심(疑心)할 여지가 없어요, 만약 그렇게 되면 삿갓 선생은 그 애를 불쌍하게 여겨서 적당한 기회(機會)에 그 애를 거두어 주실 용의(用意)는 없으시겠소?>
김삿갓은 무봉의 말을 듣고 기절(氣絶)초풍(風)할 듯이 놀랐다, 김 향수가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죽거든 그의, 소실인 누이동생을 거두어 달라는 말은, 아무리 가상적(假想的)인 설화(說話)이기로 있을 수 없는 부탁이기 때문이었다.
<에이, 여보시오, 무봉 선생은 주정(酒酊)을 해도 분수가 있지, 그게 무슨 말씀이오, 아무리 주정이라도 그런 말씀은 두 번 다시는 하지 마시오!>
그러나 무봉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나는 주정(酒酊)이 아니고 진담(眞談)이에요, 삿갓 선생도 언제까지나 독신으로 지낼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
《정비석(鄭飛石) 풍류소설(風流小說) 《소설 김삿갓》 (제2권), 92쪽~94쪽-계속-(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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