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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운당 건립 발원문>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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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석봉1 2025. 6. 2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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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잔금(殘金)을 정리하고, 집 지을 땅에 축대(築臺)를 쌓고, 터를 다졌다. 집터를 잡고, 다지는 일도 간단하지는 않았다.

 

우선 집은 방향이 중요하다. 가장 이상적(理想的)인 방향은 동남향(東南向)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야 채광(採光)과 통풍(通風)이 좋다. 그다음이 남향과 서남향이다. 옛말에 삼대(三代)가 적선(積善)해야 남향집을 가진다고 했다.

 

집을 동남향(東南向)으로도 지을 수는 있지만, 뒷산과 땅, 마을의 배치상으로 보면, 서남향(西南向)으로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지리산(智異山) 천왕봉을 직선으로 바라보는 방향(方向)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향을 잡고, 저 멀리 천왕봉(天王峯)을 바라보니 구름송이들이 잔잔히 밀려오다가 때로는 밀려가는 그 모습이 아주 환상적(幻想的)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구름을 바라보는 집이란 뜻으로 집의 당호(堂號)를 망운당(望雲堂)이라 지었다.

 

참고로 지리산은 1967년 최초의 국립공원(國立公園)으로 지정된 산으로 경남의 하동(河東), 함양(咸陽), 산청(山淸)과 전남의 구례(求禮), 전북의 남원(南原) 3개도, 5개 시군에 걸쳐 483.022제곱 킬로미터 면적을 지닌 산악형(山岳形) 국립공원이다.

 

둘레가 320km나 되는 지리산에는 많은 봉우리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천왕봉(天王峯, 1,915m), 반야봉(般若峯, 1,732m), 노고단(老姑壇, 1,507m)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20여 개의 능선 사이로 계곡들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집을 짓기 위하여 관련(關聯) 책이나 자료(資料)를 검토(檢討)하면서 공부를 제법 하였다. 당시 내가 한 일들을 여기 옮긴다.

 

,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집터를 잡은 후에는 축대(築臺)를 쌓았다. 우리 집의 경우, 집터가 뒷산과 연결되어 있고 경사(傾斜)가 높아 축대를 쌓지 않으면 자칫 산사태(山沙汰)가 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얕은 축대가 아니라 어른 키 한질 반이 넘는 축대가 필요했다. 축대를 쌓으려면 돌이 필요했다. 그 돌들은 인접한 채굴장(採掘場)에서 구매했다.

 

그리고 집터 앞에 조그만 연못이 있는데 그곳에도 축대가 필요했다. 이렇게 집터 앞 뒤쪽에 축대를 쌓았다. 다행히 내 사촌이 굴삭기를 가지고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그이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 이후 터를 다지고 건축(建築)을 시작하였다.

 

건축을 시작하기 전에 땅속에 배수관(配水管)을 설치해야 한다. 배수관에는 상수도관과 하수도관이 통과하는 배수로가 별도로 필요하다. 상수도관(上水道管)은 부엌의 수돗물을 흘려보내는 관이고, 하수도관(下水道管)은 화장실의 물을 흘려보내는 관을 말한다.

 

이곳은 시골이라 공공 상하수도 시설이 없었다. 가정마다 정화조(淨化槽)를 설치하여 그 물은 별도의 관에 연결하여 강으로 흘려보낸다. 이런 배관공사(配管工事)를 하는 데는 주민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마침, 마을 이장(里長)이 내 초등학교 동기라 주민들의 동의(同議)를 얻기는 쉬웠다. 물론 이곳은 집 짓기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는 땅이기는 하다만, 시골 주민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득()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마시는 물은 물론 설거지하는 물도 문제였다. 사실은 집터를 다지기 전에 물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지만, 운곡(雲谷)마을은 공공 수돗물이 들어오지 않은 동네다. 그래서 지하수(地下水)를 개발하여 그 물을 마을 공동으로 먹고 있었다.

 

마침, 마을 공동(共同) 지하수 물탱크가 바로 우리 집터 부근에 있었다. 나는 이 물을 끌어다 마시려는 심산(心算)인데, 동네 사람들이 반대했다.

 

반대(反對)하는 이유는 지금도 물이 부족(不足)한데 새로 이사(移徙) 오는 사람에게까지 물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일종(一種)의 텃세이긴 하다만……,

 

마을 주민들과의 협상이 여의치 못해 결국은 자체 우물을 파기로 했다. 우물 파는 업체에 시공(施工)을 부탁하여, 80미터쯤 파니 물이 콸콸 쏟아졌다. 그래서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사실, 물을 마음대로 쓸려면 개인 우물이 필요하기도 하였다.

 

집 짓는 일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 이야기를 여기서 다 하기는 어렵겠고, 아무튼 일 년여 만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완성(完成)할 수 있었다. 2)-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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