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 탈모증은 왜 생길까?
면역 작용에 이상이 생겨 모근이 고장 났기 때문이다. 멀쩡하던 머리카락이 어느 날 갑자기 동전 모양으로 뭉텅 빠지며 두피(頭皮)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증상을 원형(圓形) 탈모증(脫毛症)이라고 한다.
원형 탈모증은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도 걸릴 수 있다. 원형 탈모증을 앓는 사람의 4분의 1이 15세 이하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우리 몸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적을 처치(處置)해서 몸을 지키는 면역이라는 작용이 있다. 원형 탈모증은 면역(免疫)이 모근(毛根)의 특정 부분(모포)을 실수로 공격해서 망가뜨려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게 되어 나타나는 질환(疾患)이다.
면역이 모포(毛浦)를 공격하는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피로(疲勞)와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일어나기 쉽다고 한다.
원형 탈모증은 유전성(遺傳性)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참고로, 머리 전체와 속눈썹, 눈썹, 몸의 털이 빠지는 원형 탈모증도 있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 (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157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을미년 11월(1595년 11월)
11월 1일(기사/12월 1일)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느지막이 나가 공무를 보았다. 사도 첨사가 나갔다. 함평과 진도, 무장의 전함(戰艦)을 내보냈다.
김희번(金希番)이 서울에서 내려와서 조정의 관보와 영의정의 편지를 전달했다. 조정의 편지를 가지고 오면서 원흉(元兇, 경상 우수사 원균을 지칭)이 보낸 답장도 가지고 왔는데 몹시도 흉악하고 거짓되어 입으로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속이는 말들이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우니, 하늘과 땅 사이에 원균처럼 흉악하고 망령된 이는 없을 것이다. 투항해 온 왜놈들에게 술을 먹었다. 오후에 방답 첨사와 활 7순(巡)을 쏘았다.
11월 2일(경오/12월 2일)
맑다. 곤양 군수 이수일(李守一)이 찾아와서 만났다.
11월 3일(신미/12월 3일)
맑다. 황득중(黃得中)이 들어와서 ‘왜선 두 척이 청등(靑登, 거제시 사등면 청포마을)을 거쳐 흉도(胸島, 거제시 동부면 고개도)에 이르렀다가 해북도(海北島, 통영시 용남면)에 정박하여 불을 지르고 돌아가서는, 춘원포(春院浦, 통영시 광도면 여승포) 등지에 이르렀다’고 전하고 새벽에 지도(紙島)로 돌아갔다.
11월 4일(임신/12월 4일)
맑다. 새벽에 이종호(李宗浩)와 강기경(姜起敬) 등이 들어와 만났다. 변존서(卞存緖)의 편지를 보니 조카 봉(峯)과 해(荄) 형제가 본영에 도착했다고 한다. 직장(直長) 이여옥(李汝沃) 형 집에서 이보(李甫)의 편지가 왔는데 비통함을 표현할 수가 없다.
곧바로 답서를 작성하여 이보(李莆)에게 보냈다. 쌀 2곡(斛, 1곡이 열 말이니 2곡은 스무 말), 6장의 유둔(油芚, 두꺼운 기름종이)과 여러 자잘한 물건들을 찾아서 보내도록 지시했다.
또한 아들의 편지를 보니 요동의 왕울덕(王鬱德)은 왕(王) 씨의 후예로서 군사를 일으키려 한다고 했다. 매우 놀랄 일이다. 우리 병사들의 힘이 다하여 피폐한데 이를 어찌하랴! <일기초>
주1) 여옥(汝沃)은 이은신(李殷臣, 1539~1594)의 자다. 이은신은 이백복(李百福)의 손자이고 이지(李贄)의 아들이다. 유성용의 친구인데 유성용이 한밤중에 이은신의 정원 정자에서 함께 노닐며 시를 지었다. 《서애집》
주2) 이보(李莆, 1571~1638)는 자(字)가 요서(堯瑞)이고 이순신의 큰할아버지 손자인 이은신(李殷臣)의 아들이다.
11월 5일(계유/12월 5일)
맑다. 남해 현령, 금갑도(金甲島) 만호, 남도포(南桃浦) 만호, 어란포 만호, 회령포(會寧浦) 만호와 정담수(鄭聃壽)가 왔다. 방답 첨사와 여도 만호도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11월 6일(갑술/12월 6일)
맑다. 송희립(宋希立)이 들어왔다. 띠 풀 400동(同), 생 칡 100동(同)을 베어서 실어 왔다.
11월 7일(을해/ 12월 7일)
맑다. 하동 현감 최기준(崔琦準)이 교서(敎書)와 유서(諭書)에 숙배(肅拜)했다. 경상 우수사가 순찰사가 있는 곳으로 왔다. 미조항 첨사(僉使)와 남해 현령도 왔다.
주) 최기준은 정병 159명을 이끌고 진주를 수비하고, 도장(都將)으로서 의령에서 왜적을 물리쳤다.
주2) 교서와 유서는 임금이 관찰사, 절도사, 방어사(防禦使) 등이 부임할 때 내리는 명령서.
11월 8일(병자/12월 8일)
맑다. 새벽에 조카 완(莞), 종 경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김응겸(金應謙), 경상도 순찰사의 군관 등이 왔다.
11월 9일(정축/12월 9일)
맑다. 여도 만호 김인영(金仁英)이 들어왔다.
11월 10일(무인/12월 10일)
맑다. 새벽에 경상도 순찰사의 군관이 돌아갔다. -175-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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