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난중일기> 168

서평

by 웅석봉1 2025. 5. 31. 12:29

본문

잠을 자면서 왜 이리저리 뒤척일까?

 

몸의 어느 한 곳에 혈액(血液)이 고이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서다. 자는 동안에 심장(心臟)은 쉬지 않고 움직여 혈액이 온몸을 순환한다. 그런데 같은 자세로 자면 어느 한 곳에 혈액이 모이거나 몸의 무게로 혈관이 눌려 혈액 순환(循環)이 나빠질 수 있다. 혈액이 막히지 않고 잘 흐르게 하려고 자면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는 것이다.

 

하룻밤 동안 몸을 뒤척이는 횟수는 수면(睡眠) 시간과 계절(열대야가 심한 여름에 중가)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략 20~30회로 알려져 있다. 몸을 뒤척이는 타이밍은 렘수면(얕은 수면)과 논렘수면(깊은 수면)이 바뀔 때가 많다.

 

몸을 뒤척이지 않고 같은 자세를 계속 유지하면 혈액 순환에 지장(支障)이 생긴다. 심하면 피부에 구멍이 뚫리는 욕창(褥瘡)이 생길 수도 있다. 건강한 사람은 걱정할 필요 없지만, 질병이나 부상으로 몸을 잘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은 주의(注意)해야 한다.

 

과학 잡학사전 통조림 <인체 편>(지식을 쌓으려면 통째로 조목조목!) <엮은이 키즈나출판 편집부, 옮긴이 서수지, 감수 이경훈, 하라다 도모유키(原田知辛) (사람과 나무 사이, 2023)>, 150쪽에서 인용.

 

각설하고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821(신유/924)

 

흐리다. 저녁나절에 소비포(所非浦,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춘암리) 앞바다에 이르니 전라 순찰사 홍세공(洪世恭, 1541~1598)의 군관 이준(李浚, 1540~1623)이 공문을 들고 왔다. 강응호(姜應虎)와 오계성(吳繼成)이 같이 와서 함께 한 시간 남짓 이야기했다.

 

경수<(景受), 이억기<(李億祺, 1561~1597)>와 언경<(彦卿), 권준(權俊)>, 자윤<(子胤), 박종남(朴宗男, ?~1601)>과 언원<(彦源) 신호(申浩, 1539~1597)>에 편지를 썼다.

 

저물 무렵에 사천 땅 침도(針島, 사천시 신수도)에서 잤다. 밤공기가 몹시 차갑고 몸과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 경수(景受), 언경(彦卿), 자윤(子胤), 언원(彦源)은 본인들의 자().

 

822(임술/925)

 

맑다. 이른 아침에 몇 가지의 공문을 만들어 체찰사에게 보냈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사천현(泗川縣)으로 나갔다. 오후에 진주 남강 변에 이르니 체찰사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이 이미 진주에 들어왔다고 한다.

 

823(계해/926)

 

맑다.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이 있는 곳으로 가서 조용히 이야기하는 사이에, 나는 백성을 위해서 고통을 덜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반면에 호남 순찰사 홍세공(洪世恭, 1541~1598)은 헐뜯는 말만 하대니 한탄스럽다.

 

저녁나절에 김응서(金應瑞)와 함께 촉석루에 올라 장병들이 패전하여 죽임을 당하는 곳을 보니 비통함을 가누지 못하였다. 얼마 후에 체찰사가 나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하시니 배를 타고 소비포(所非浦)로 돌아와 정박했다.

 

) 촉석루는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누각(樓閣)으로 남강 변의 바위 벼랑 위에 있다. 임진년 왜적이 침입했을 때 진주성의 지휘 본부이었고, 이 아래에 논개가 왜장을 유인하여 순국한 의암(義巖)이 있다.

 

824(갑자/927)

 

맑다. 새벽에 소비포(所非浦) 앞에 이르니 고성 현령 조응도(趙凝道, ?~1597)가 와서 인사했다. 그리고 소비포 앞바다에서 잤다. 체찰사와 부사 김륵(金玏), 그리고 종사관 남이공(南以恭)도 잤다.

 

) 김륵(金玏, 1540~1616)은 전라도에서 곡식을 운반해 빈민을 구제하고, 1595년 체찰사 이원익의 부사(副使)가 되었다. 남이공(南以恭, 1565~1616)은 사헌부 지평이 되고 체찰사 이원익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었다.

 

825(을축/928)

 

맑다. 일찍 아침 식사를 한 뒤에 체찰사와 부사, 종사관은 모두 내 배에 함께 탔다. 오전 8시쯤 출항하여 배 위에서 여러 섬과 여러 진을 합병할 곳과 더불어 접전할 곳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하루 종일 논의하였다.

 

곡포(曲浦, 남해군 이동면 화계리)는 평산포(平山浦, 남면 평산리)와 합하고, 상주포(尙州浦, 상주면 상주리)는 미조항(彌助沆, 삼동면 미조리)에 합하고, 적량(赤梁, 창선면 진동리)은 삼천진(三千津, 삼천포)에 합하고, 소비포(所非浦, 고성군 하일면 춘암리)는 사량(蛇梁, 통영시 사량면 금평리)에 합하고,

 

가배량(加背梁, 거제시 도산면 노전동)은 당포(唐浦, 통영시 산양면 삼덕리)에 합하고, 지세포(知世浦, 거제시 일운면)는 조라포(助羅浦, 일운면 구조라리)에 합하고, 제포(薺浦,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은 웅천(熊川, 창원시 진해구)에 합하고, 율포(栗浦, 거제시 장목면 대금리)는 옥포(玉浦, 거제시 옥포동)에 합하고, 안골포(安骨浦, 창원구 진해구 안골동)는 가덕진(加德鎭, 부산시 강서구 천가동)에 합치기로 했다.

 

저녁에 진중(陣中)에 이르러 여러 장수들이 교서(敎書)에 숙배(肅拜)하고 공사례(公私禮)를 마친 뒤에 헤어졌다.

 

826(병인/929)

 

맑다. 저녁에 부사와 만나 은밀하게 숙의했다.

 

827(정묘/930)

 

맑다. 군사 5,480명이게 음식을 먹였다. 저녁에는 상봉(上峯, 한산면 망산)에 올라 적진과 적이 다니는 길목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았다. 바람이 몹시 사납다. 밤에 도로 내려왔다.

 

828(무진/101)

 

맑다. 이른 아침에 체찰사(體察使)와 부사. 종사관이 같이 앉아 고치기 어려운 폐단에 대해 의논했다. 아침밥을 먹기 전에 배로 와서 배를 몰고 나갔다.

 

829(기사/102)

 

맑다. 일찍 나가서 공무(公務)를 보았다. 체찰사(體察使)가 머문 곳에서 경상 수사 권준(權俊)이 왔다. -168-계속-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중일기> 170  (0) 2025.06.02
<난중일기> 169  (1) 2025.06.01
<난중일기> 167  (3) 2025.05.29
<난중일기> 165  (2) 2025.05.27
<난중일기> 164  (1) 2025.05.26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