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 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서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 전문.
<어설픈 해설>
가난하다고 해서 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왜 그리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왜 두려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왜 사랑을 모르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인생을 버려야 하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신경림 시인이 위 시를 쓰게 된 사연에 대해서는, 고두현(1963~ 경남 남해 출신, 한국경제 논설 위원)의 글을 인용해 보면,
-서울 성북구 길음동 산동네에 살 때였다고 합니다. 집 근처에 자주 들르던 술집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그 집 딸과 연인 사이인 한 청년을 만났다는군요. 그는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는 열정을 지녔지만, 한편으론 많이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처지를 못내 부끄러워하는 순박한 젊은이였죠.
청년이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그 집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너무 가난해서 결혼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하긴 딸 가진 부모로서는 그런 사위를 맞아들이기가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청년은 그 집 딸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를 여러 번이나 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시인은 청년에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둘이 결혼하면 주례도 해 주고 결혼 축시도 써주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말에 힘을 얻어서 둘은 머잖아 결혼식을 올리게 됐지요. 결혼식장에서 시인은 그들을 위해 「너희 사랑」이라는 축시를 지어 읽어주었습니다.
*<너의 사랑> 축시는 생략함.
결혼식은 어느 건물의 비좁고 허름한 지하실을 빌려서 했습니다. 청년이 노동운동으로 지명수배를 받아 쫓기는 신세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요.
숨어서 치른 결혼식은 자못 감동스러웠습니다. 축하객은 다 합쳐봐야 열 명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얼마나 가습 저린 사랑의 결실인지 알고 있었기에 저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축하를 보냈습니다.
그날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돌아온 시인은 두 사람이 겪은 마음고생과 인생의 쓰라림을 달래는 마음으로 시 한 편을 더 썼습니다. 그때 탄생한 시가 바로 <가난한 사랑 노래>입니다. *2024년 5월 22일 <고두현의 아침 시편>에서 인용함.
위 시는 시집 『가난한 사랑 노래』(실천문학, 1988)에 수록된 시.
참고로, 신경림 시인(1936~2024)은 2024년 5월 22일, 국립암센터에서 별세하였다. 향년 88세. 빈소는 서울대병원, 대한민국 시인 장으로 장지(葬地)는 충북 충주 선영,
《나무 위키》, 《위키 백과》 등 참고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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