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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에 살리라> 12

단편소설

by 웅석봉1 2024. 3. 2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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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혁신도시의 맨발걷기 장

 

7. 청산골

 

추석이 다가온다. 영수는 어제 과수원에 올라, 때깔이 좋은 놈을 하나 골라 맛을 보았다. 당도가 예년만 못하다. 상큼한 향기도 덜하다. 올해는 늦여름까지 비가 많아 일조량이 부족했다. 그리고 년 초에 양계장 일로 과수원 밑거름을 소홀히 한 것이 원인이다. 다소 우울하다.

 

*은행원, 부당해고 무효 청구 소 제기.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오늘 신문 사회면 2단짜리 기사가 우울한 그를 더욱 혼란하게 한다. , 혼란스럽다. 무슨 죄를 저질러서 해고까지 당하고서는 소송이라, 잘들 논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지영이 생각이 났다.

 

그래……, 억울한 일이 있으면 안 되지. 하는 마음을 머금고(?) 그는 심란한 기분으로 경운기를 몰고 과수원으로 향했다.

 

과수원 입구에 들어서니 어쩐지 썰렁한 바람이 휙 지나갔다. 아차, 하는 생각과 동시에 양계장을 쳐다보니, 대문이 열려있다.

 

좀 다가가서 살피니 열려있는 게 아니라 아예 부서진 채로 덜컹거렸다.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피 비린 냄새가 코를 찌르고 펼치진 광경이 눈을 의심케 하였다.

 

순간적으로 그는 도둑이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도둑은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계사(鷄舍)는 난장판 그 자체였다. 쪽문도 떨어져 나갔고 안쪽의 기둥 두 개가 빠져서 건들거렸다. 바닥은 씨름판처럼 파여 있었다.

 

닭장 안에는 사료용으로 쌓아둔 보리가마니 두 개가 터져서 모두 흘러내렸고, 계란(鷄卵)들이 여기저기서 노란 창자를 드러내고 쪼개져 있었다. 그뿐이라면 다행일 텐데, 닭장 안의 주인공들의 당한 모습은 처참하다.

 

눈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놈. 목이 반쯤 끊기어 달랑거리는 놈. 몸통이 아예 떨어져 목과 분리된 놈. 어떤 놈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아비규환에 그는 망연자실하였다.

 

그런데 허공을 보다가, 고개를 숙여 계사 바닥을 보니, 개떡보다도 더 큰 시커먼 배설물이 세 개나 땅바닥에 팽개쳐져 있었다. 그것은 분명코 사람의 짓이 아니었다. 곰이 아니면 멧돼지다. 한두 놈이 아니다. 떼거리로 쳐들어왔다.

 

멧돼지가 가끔 이웃 마을 근처에 내려와서 농작물을 난장판으로 만든다는 소문은 들었어도, 이렇게 살아있는 동물을 해친다는 소리는,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다. 아무리 잡식성인 놈들이지만 생떼 같은 놈들을 먹어 치우다니 하, 기가 차고 어안까지 벙벙하다.

 

그러나 침착하자. 그리고 찬찬히 생각해 보자. 생각하니 내 잘못이 크다. 잘못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었다.

 

<양계장 문을 너무 허술하게 한 것이 첫 잘못이요, 이놈들이 여기까지 치고 올 줄 모른 나의 대외 감각이 두 번째 잘못이고, 무엇보다도 닭을 새로 키워서 날게 하지 못한 것이 세 번째 잘못이다. 마지막 잘못이 결정적 잘못이다. 후회막급(後悔莫及)이로소이다> -계속-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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