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가 연락이 안 되네. 이 자식~이, 내가 문자를 보내도 답도 없고. 야~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그래서 전화했는데……, 너희들은 서울에 같이 있으니까 자주 만나겄제”
“응 가끔 만나지. 그런데 요즘은 안 만난 지 제법 되네”
“그럼, 경우한테 연락해서 나한테 전화 좀 하라고 해라”
지영이는 영수의 전화를 끊고, 곧바로 경우의 핸드폰을 눌렀다. 꺼져있다. 그제야 그는 경우가 <한라 은행>에 다닌다는 사실과 바로 사고 난 그 지점에 근무한다는 사실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혹시 해외로 날은 놈이 경우! 그는 신문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신문에는 박 아무개로 되어 있고 실명은 표시되지 않았다.
경우가 그런 일에 가담되었으리라고는 추호도 생각되지 않았다. 평소에 잘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학교 다닐 때 보면 아주 착실한 모범생이었다. 범죄와는 거리가 먼 그런 형이다.
그런데 깊이 생각하니 꺼림칙한 구석이 있었다. 지난해 추석인가 고향에 내려갔을 때다. 어머니가 한 말이 걸린다.
“야~아~야, 옆집 경우는 매달 저그 엄니 생활비로 백만 원씩 보낸다 안~카나. 너는 은행에 저금을 하니께 그렇게는 못 보내 제. 나야 뭐, 상관없다. 촌에서 돈 쓸 일이 그리 있나. 너나 돈 빨리 모아서 장가도 가고 해라. 부모가 더 이상 너를 도와주지도 못할끼고, 나야 뭐, 네한테 덕 볼라고는 안할 끼다. 네가 알아서 모든 걸 잘해라. 명심해라.”
지영이는 그때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어머니 말을 듣고만 있는데, 계속 말씀을 이어간다.
“이것, 저것. 생각해 보면, 내가 너한테 쪼매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경우는 이억씩이나 들여서 저그~집 새로 안 지었나. 아들이나 경우나 똑같이 대학 공부하고 은행에 취직했는데, 은행 월급이 다르지도 않을~긴데, 경우는 돈 잘 벌어 부자고 아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내가 거기 좀 서운한~기라.”
당시 지영이는 어머니의 그 말에 크게 개의치 않았었다. 집 짓는 거야 은행 대출을 받았을 수도 있고, 생활비 보내는 것도 저축 안 하면 그만한 돈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어딘가 무리가 있다. 담보도 없을 것인데, 어떻게 이억이나 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 또, 매달 일백만 원도 적은 액수는 아니다.
다음 날 지영이는 <한라 은행>에 다니는 대학 동기를 통하여 경우의 소식을 알 수 있었다. 그 사건으로 은행 내부가 마비 지경이란다. 3년 동안 그 지점에 근무했던 직원들이 경찰의 호출에 시달리면서 자술서를 쓰고 계좌 조사도 당하고 있다고 한다.
경우도 그 사건의 공범자로 의심받아 경찰 조사를 받고 있으며, 아마도 수사는 한 달 이상 계속될 전망이라고 했다. -계속-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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