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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10

단편소설

by 웅석봉1 2024. 2. 1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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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온 이후 전깃불 아래에서 바느질도 하고 얼굴에 화장도 해 보았다. 확실히 읍내에서 살아보니 산속에서 살 때보다, 보는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으니 자연 씀씀이도 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생활방식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들은 매일 오후 10시에 잠자리에 들어서 아침 6시에 어김없이 일어난다. 하루에 8시간은 챙겨서 잔다. 살면서 처음으로 문화생활을 하는 셈이다.

 

한편 친정아버지인 김 초시 어른이 분명히 돌아가셨을 것인데 기일을 모르니 어쩌랴, 그래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를 알아보니 음력 99일을 기일로 생각하고 제사 지내라고 하기에 그렇게 지내기로 했다.

 

제사는 원래 자시(子時)에 지내야 하는데…… 법도에 좀 어긋나기는 하지만, 술시(戌時)에 지내고 잠은 꼭 제시간에 잔다. 그래야 낮에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을 그들은 실천하고 있다.

 

그러고는 아침을 맛있게 차려 먹는다. 삼시세끼 식사는 위를 70%만 채운다. 70%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지만 배가 부르기 직전에 수저를 놓는다. 많이 채우면 과식이 되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그들도 터득했다.

 

그다음에는 화장실을 찾는다. 비록 공동화장실이지만 수세식이라 너무나 편리했다. 화장지까지 비치되어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지만 그것이 시행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아다다는 아침을 먹고는 바로 화장실로 가서 대변을 보았다. 처음에는 아침 먹기 전에 갔으나 요즘은 먹고 나서 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고정화되었다. 지극히 정상이다.

 

그러고는 집으로 와서는 양치질한다. 누구는 양치질한 후에 화장실에 가라지만 요즘의 건강 상식은 그게 아니다. 화장실부터 간 후의 식후 30분경의 양치질이 정상적인 치아 관리라고 보건소에서 가르쳐 주었다.

 

5.

 

읍내로 이사해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추석이 다가왔다. 추석 수일 전에 반장이 무료 목욕 입장권 한 장을 아다다에게 가져왔다. 관내 노인들에게 읍내 라이온스클럽인가에서 선물한 것이라고 말했다.

 

입장권 한 장을 두고 그날 밤 모녀는 서로 목욕탕에 가라고 실랑이를 벌였다. 사실 두 사람 다 태어나서 한 번도 대중목욕탕에 가본 일이 없었다.

 

아다다는 나는 목욕탕에 못 간다, 아니 갈 필요가 없다고 우긴다. 집에서 찬물에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단다. 어버버는 아다다한테 온 선물을 어떻게 자기가 가로챌 수 있느냐는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자기는 부끄러워서 도저히 갈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밤을 새워 목욕탕 문제로 씨름했지만,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한 어버버는 다음 날 큰 용기를 내어 말했다.

 

둘이 같이 가자는 묘안을 냈다. 고개를 설레설레 돌리는 아다다에게 추석인데 돈 한 번 쓰자고 우겼다. 아다다는 딸의 간청을 거절하지 못했다.

 

추석 전날의 목욕탕은 생각보다는 붐비지 않았다. 모두 들 고향으로 내려간 모양이다.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탕으로 들어간 모녀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봐가며 우선 물을 한 바가지 끼얹고 머리부터 감았다.

 

대충 몸을 씻은 모녀는 온탕으로 들어갔다. 물이 뜨겁다. 아다다는 견딜 만한데 어버버는 뜨거운 모양이다. 어버버가 탕에서 일어선다.

 

그때 아다다의 눈이 어버버의 음모에 고정되면서 그녀의 눈이 흠칫한다. , 어쩌면 딸이라고 저렇게 어미 것을 닮았을까. 자기 중년 때 것과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 10)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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